재난은 여성에게 예의가 없다
재난은 여성에게 예의가 없다
  •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 승인 2020.05.28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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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매일이 불안하다. 코로나19로 일상이 정지된 채 수개월을 버티다가 확진자 수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자 조심스럽게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태원 발 감염이 급작스럽게 확산하면서 다시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노래방이나 주점 등 다중이용시설을 통로로 지역사회내 감염확진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방역당국은 n차감염의 고리를 끊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주 부터 고3을 필두로 이번 주는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학생들의 등교가 순차적으로 시도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요인들이 도사리고 있어 조마조마하다. 국가방역의 중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질병관리본부장 정은경보유국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은 높아졌지만, 감염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위험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학생이나 학령전 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오랜 시간 온전하게 감염으로부터 아이들을 방어하면서 돌보는 일은 아주 큰 부담이었고 엄마들의 몫은 상상 이상이었다. 긴급돌봄이 제공되고는 있으나 걱정과 눈치가 공존하고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안전을 챙겨야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 점심 챙겨주러 잠시 들르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품앗이 돌봄으로 메워나가기도 한다. 특히 일하는 엄마들은 제도적으로 돌봄휴가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 긴 시간을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그러한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엄마들은 많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는 엄마들에게 또 다른 역할부담을 지워주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유엔여성기구 인도주의 및 재난특보인 마리아 홀츠버그는 ‘위기는 항상 성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했다. 이번 코로나사태는 분명히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경험을 하게 했다.

 재난상황에서 젠더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0년 3월 현재 취업자 중 일시휴직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 중 여성은 411.9%, 남성은 293.2% 증가하여 여성이 남성보다 일시휴직의 피해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비경제활동인구도 5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가운데 계속 감소해 오던 육아와 가사로 인한 비경제활동인구가 올 3월 증가로 돌아섰고 전년 대비 남성은 감소했는데 여성만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요양, 급식, 보건, 돌봄, 청소, 서비스 분야의 노동지위는 불안정하고 이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우선 해고대상이었다. 특히 아이돌보미,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 여성노동에 의존하던 돌봄서비스는 감염의 우려로 인해 ‘내일부터 오지 마세요’라는 한마디로 강제 취소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사라진 돌봄의 공백을 여성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포기하고 달려가 메웠다. 서서히 열리는 보육시설이나 학교가 대책없이 또다시 문이 닫힌다면 가족돌봄을 위해 엄마들은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도 여성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았다. 세대주가 신청해 지급받도록 설계된 지원금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들린다. 이혼한 부모의 자녀의 경우 실제 거주와 생계를 같이하는 부모가 아니라 세대주인 부모에게 지원금이 지급되고 이혼소송중이거나 별거중인 부부도 세대주에게 전액 지급되기도 했다. 주민등록상의 세대가 실제 생계를 함께 하는 가족과 동일하지 않다는 현실이 간과되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속출하자 정부는 이의신청하면 세대주와 분리해서 받을 수 있도록 조처했다. 모두에게 뿌듯해야 할 긴급재난지원금은 여성들이 더 곤란을 겪었다. 세대주가 아니라면 본인명의 기부도 할 수 없었다.

 이번 코로나19는 여성들에게 친절하지도 배려하지도 않았고 함부로 예의 없이 찾아들었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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