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27> 金文達(김문달)옹...인간문화재 11호
[자랑스런 얼굴] <27> 金文達(김문달)옹...인간문화재 11호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6.06 0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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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운 우리가락 괭과리에 싣고

“농사가 풍년이면 풍년인대로, 퓽년이면 흉년인대로 손목이 휘고 아플때까지 괭과리를 두들겼지요”

 농악대의 우두머리 상쇠가락에 묻혀 삶을 누려온 인간문화재 11호 金文達옹(김문달·93김제군 백학면 부용리).

 주름진 얼굴과 손가락 마디마다 이땅의 농민들의 희노애락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듯 金옹의 자태는 자못 엄숙하기까지 하다.

 金옹의 부친 金치덕씨도 선조로부터 기능을 전수받은 뛰어난 상쇠. 金옹은 15세때 부친의 가락을 이어받아 농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한다. 이후 井邑에 거주하던 金道三씨의 부름을 받아 15년여를 수련, 金옹의 나이 35세에 이르러 상쇠로서 완전한 자리를 굳힐수 있었다고.

 金옹의 괭과리 소리는 서울을 비롯,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흥겨움을 자랑하며 이름을 떨쳐왔다.

 金옹의 나이 62세때인 1965년에는 白鶴(백학)농악대를 구성, 옥구군 주최 농악경연대회에 처음 출전하여 1위를 차지, 1970, 1978년 전국대회 1위 등을 휩쓸어 백학농악을 빛내왔으며 급기야는 그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1985년 11월9일 인간문화재11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농사일도 제쳐두고 농악에만 몰두하다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논 열다섯마지기도 빚에 못이겨 팔아야만 했다”는 金옹은 한때는 괭과리 때문에 부인 심순애여사(73)와 헤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고 어려웠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83세의 고령임에도 기력이 왕성해 ‘괭과리만 손에 들면 온몸에 힘이 솟아 마당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金옹.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또 괭과리를 칠거여”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그의 한마디가 듣는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글 김순무·사진 김영호
 옮긴이 김재춘
 1988년 12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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