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원격의료’의 추억, 전화처방 논란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원격의료’의 추억, 전화처방 논란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0.05.2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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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로 전화를 이용한 비대면 진료와 처방이 점점 확대되자 의료계 일부가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 2월 24일 코로나19 확산이 되자 감염 억제 차원에서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는 의료법에 대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인 전화상담과 진료를 허용한다고 발표하였고 이후 지난 10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26만 건의 전화상담과 처방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 주요 부처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시적으로 허용한 ‘원격의료’를 제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의협은 18일 회원에게 전화 진료를 중단하라는 권고문을 보냈다. 의협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목숨을 걸고 헌신하는 의사들에게 충분한 지원은 하지 못할망정 비대면 진료, 원격진료 등을 새로운 산업과 고용 창출이라는 의료 본질과 동떨어진 명분을 내세워 정작 진료 시행의 주체인 의료계와 상의 없이 전격 도입하려 한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최대집 의협 회장은 “청와대와 정부는 코로나19 국가재난사태를 정략적으로 악용하여 비대면·원격진료를 일방적으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라며 “돈은 더 내고 저질 진료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비대면-원격진료,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렇게 졸속으로 강행돼야 하느냐?”고 주장하였다.

 의협과 개원의,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 일부는 원격의료 확대가 일부 대형 병원에 혜택을 주고 중소병원은 경영난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화 진료와 처방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제도화되면 원격의료 도입도 더 쉬워진다는 판단이다. 그 경우 환자는 먼 지역에 있는 대형병원의 진료를 간편하게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비대면 진료의 한계로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고, 중소병원을 찾는 환자는 급감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의협의 반발에 정부는 전화처방 허용은 코로나19로 인한 한시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19일 “정부가 실시한 전화상담·처방은 감염병 위기상황에서 상당히 한정된 형태로 진행한 진료”라며 “위기 상황에서 안전한 의료이용, 특히 기저 질환자와 노인들의 의료접근성 문제 해결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윤태호 중대본 방역 총괄 반장은 “(전화 진료를) 원격의료의 측면에서 제도화하는 방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감염병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전화 진료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초에 원격의료 도입은 보수적인 이전 정권들에서 강력히 추진하던 주요 의료정책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 원격의료도입이나 의료민영화 같은 의료계의 의제는 수면 아래로 사라진 듯하였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원격의료 도입은 의료 취약지구와 거동이 불편한 만성 노인환자들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으나 원격의료를 위한 첨단 IT 인프라나 네트워크의 설치, 모바일 진료 등 많은 투자와 첨단설비의 도입이 필연적인 실정에서 동네 병·의원이 대형병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애초 불가능하다는 점을 의료계는 두려워하는 것이다. 서울대병원이나 삼성병원이 저명한 의사들과 의료진을 동원해 대형 원격의료센터를 만들고, 쌍방향 화상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면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사라진 4차 혁명이 강제된 의료시스템에 의해 결국 동네 병·의원은 멸종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로도 현재 4대 대형병원 등은 이미 원격의료를 통한 수익 창출 모델의 개발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이 이미 ‘헬스커넥트’라는 회사를 만든 상태이고 삼성병원-삼성전자, 연세대 병원-KT가 원격의료사업을 공동 추진 중인 것은 의료계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졌다. 결국, 이런 원격의료는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키고 대형병원과 재벌기업이 의료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해 의료비 상승과 의료 공공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는 경고하고 있다.

 정부의 설명처럼 이번 한시적 전화처방의 허용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려는 조치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의료계의 ‘전화처방’뿐만 아니라 학생의 온라인 수업 등과 같이 모든 사회 분야에 ‘포스트코로나’ 사회가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누군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좋든 싫든 4차 혁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각종 신기술이 발달하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높은 요구와 편의성을 기대하는 현실에서 의료계도 과거에만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길이 막힌다고 신호등도 없애고 횡단보도도 없애면 결국 더 큰 재앙이 일어나는 것처럼 혹 원격의료나 의료시스템의 변화가 의료의 ‘공공성’과 ‘보편성’, 그리고 ‘휴머니즘’이라는 의료의 본질을 훼손하고 의료산업화, 자본화의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사회의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몰고 온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우리 사회가 성숙한 논의와 합의를 통해 사회 통합이라는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김형준<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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