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언어학의 방법으로 분석한 ‘왕오천축국전을 읽다’
중국 언어학의 방법으로 분석한 ‘왕오천축국전을 읽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5.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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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신라 성덕왕 때 승려 혜초가 남긴 책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다. 천축국은 바로 인도를 말한다. 혜초 스님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인도와 중앙아시아 등을 답사했다. 그 행적을 남긴 이 여행기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과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히고 있다는 것 정도가 평소 인식되어지고 있는 정보다.

 그동안 문화와 세계사, 문헌학 등의 영역에서 다각도로 조명된 ‘왕오천축국전’. 이를 언어 연구 방법으로 접근한 연구자들이 7년 만에 드디어 일을 냈다. 장장 435페이지에 이르는 ‘왕오천축국전을 읽다(학고방·3만5,000원)’를 발간한 것이다. 전북대 박용진 교수와 군산대 박병선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중국 언어학의 방법으로 ‘왕오천축국전’을 분석하고 있다. 학문의 길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인연의 끈을 놓지않고 그 결실을 맺은 인고의 산물인 것이다.

 박용진 교수는 “인연은 학문의 길에도 존재했다. 내 아이에게 사줬던 책 가운데 한 권이 ‘왕오천축국전’을 쉽게 풀어 쓴 도서였다”며 “문득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을 통해 막연히 책의 저자와 제목만 알고 있었던 이 책을 언어접촉의 관점으로 연구해볼만 한 긍정적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회고했다.

 박용진 교수는 서둘러 강독팀을 꾸렸다. 2013년부터 6명의 연구자들과 함께 ‘왕오천축국전’의 강독에 들어갔다. 그렇게 세 차례의 강독을 마치고 2014년부터 ‘왕오천축국전’의 언어분석을 시작했으며, 이들 연구자들은 현재까지 7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모든 과정을 마지막으로 정리해보자는 생각에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오천축국전’의 언어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왕오천축국전’이 6,000여 자로 만들어진 매우 제한적인 자료인데다 일부분만이 현존하고 있으며, 아직 많은 글자가 정확히 판별되지 못했고, 어떤 문구는 연구자에 따라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교감(校勘)을 통해 기존에 소개되지 않았던 ‘왕오천축국전’의 속자(俗字), 결자(缺字), 한자의 변별(辨別)을 분석했으며 한국어의 정확한 번역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또 저자 혜초가 모국어가 아닌 중국어로 지은 작품에 나타난 어색한 문구를 대상으로, 중국어가 모국어인 화자의 문장과 모국어가 한국어인 한문문헌의 문장을 비교해 중간언어 현상을 분석하는데 공을 들였다.

 여기에 현장 답사는 필수였다. 강독팀은 2015년 돈황으로 향했고,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막고굴의 16-17번 굴을 찾아갔다. 연구자 개인적으로도 키르기스스탄과 중국의 실크로드를 따라 달렸다. 혜초 스님이 만년에 머물렀다는 중국 오대산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을 길 위에 남아있을 그의 숨결을 느껴보고자 살며시 눈을 감아보기도 했다.

 박병선 교수는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하는 지난 7년 동안, 한국 현대사에 영원히 남을 일이 있었다. 세월호 침몰과 대통령 탄핵이다”면서 “이 기간 동안 ‘왕오천축국전’을 옆에 두고 대한민국의 지식인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깊게 고민했었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지식도 짧고, 목표도 크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기에 대단한 각오를 세울 수도 없다”며 “그저 혜초 스님이 지나갔던 길에서 그의 도전을 배웠고, 그 모험을 지금의 학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내 책임이고 임무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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