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김지연의 데이트 신청 ‘건지산 옆에 살아요’
사진가 김지연의 데이트 신청 ‘건지산 옆에 살아요’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5.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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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건지산 옆에 산다.

 누군가는 건지산이 건지산일 뿐이지 별거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집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 거의 매일 건지산의 길을 밟을 수 있는 특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행운이 틀림 없다.

 아무 때고 편한 시간에 편한 복장으로 나서는 야트막한 오솔길. 높다랗게 솟은 편백나무를 위아래를 오가는 청설모 무리를 만나는 즐거움, 숲 놀이터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기, 넓은 평상에 발을 뻗고 앉아 복잡한 생각들을 비워보는 시간까지…. 어느 때는 종종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와 귓가를 간지럽히기도 하니, 숲은 감동 그 자체다.

 사진가 김지연은 10년 전 건지산 근처로 이사한 이후, 이 숲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거의 매일 건지산 길을 밟으면서 숲의 들숨과 날숨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거의 매일 습관처럼 건지산의 표정을 촬영해 두었다.

 그 시간의 기록을 보여주는 ‘건지산 옆에 살아요’( 5×7사이즈 전)이 20일부터 6월 27일까지 서학동사진관에서 열린다.

 사진가가 뷰파인더로 들여다본 건지산의 속살은 특별하다. 또 다른 세계로 초대하는 신비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가 촬영한 사진 속에는 건지산의 사계절의 표정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혹시라도 놓칠세라 그 시각, 그 풍경을 붙잡아 둔 것이다.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매화를 시작으로 복사꽃이 피고 아카시아 향기가 숲 전체를 휘감는다. ‘오송제’에 연꽃이 한창일 때면 소낙비가 자주 온단다. 무성한 나무 그늘에서 비를 피하며 젖은 시간을 바라보는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가을이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저물어 가는 한해의 무게를 느낀다. 겨울에는 누군가의 묘지에 눈이 덮이고 배롱나무 가지에 소복이 눈이 올라와 앉으면, 파란 하늘에 참새떼가 바람 소리를 내며 지나간단다.

 사진가는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을 기록하다가, 어느 때는 좀 색다르게 수채화 같은 사진도 찍어 보았다.

 건지산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전주 시민의 일상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때로는 위로가 되어주고, 사랑이 되어주는 푸른 숲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김지연 사진가는 “나이가 들면 자연히 외로워진다. 몸도 마음도 단순해지고 싶다. 점점 사람과 만나는 일보다 자연에게 눈길이 가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며 “건지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솔길이 정답고, 오송제라는 저수지를 품고 있어 품이 넉넉하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건지산 옆에 살며 매일 계절에 따라 제비꽃, 복사꽃, 엉겅퀴, 아기 붓꽃, 상사화,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콩새, 소쩍새, 수꿩, 운이 좋으면 산을 가로 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다”며 “산책을 나가서 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담다보니 많은 사진들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전시는 수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가벼운 가격으로 작품도 소장할 수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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