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기념일 알리기]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보훈기념일 알리기]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0.05.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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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중항쟁으로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당시 군사정권이 79년 박정희의 사망과 함께 붕괴되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이 가시화되자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후퇴하고 억압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개된 것으로 광주에서는 5월 초부터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의 주도로 시국성토대회가 연일 개최되었고 학생들은 5월 14일부터 광주 도심으로 진출하여 시민들과 대규모 가두 정치집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시위가 확산되어 가자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집회와 시위를 진압할 계획을 현실화하였고 17일 오후 7시에 공수부대 투입명령을 내렸다. 신군부는 5월 17일 밤 11시 40분에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발표하는 한편 전국에서 대학생과 재야인사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또 국회를 비롯한 정부기관, 대학, 각종 언론사와 방송사 등에 계엄군을 주둔시켰다. 이때 전북대학교에 주둔한 계엄군에 의해 이세종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5월 18일 전남대 정문으로 학생들이 집결하자 계엄군은 학생들의 해산을 종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첫 충돌이 발생했다. 제7공수여단에 이어 추가로 파병된 제11공수여단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에게도 진압봉을 휘둘렀고 무차별 연행하였다. 이후 증파된 계엄군은 시민을 향해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9일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영찬 군이 계림파출소 인근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고, 전날 계엄군에게 영문도 모른 채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던 청각 장애인 김경철씨도 19일 사망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하여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함으로써 종결되었다. 2001년 12월 18일을 기준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사망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상이자 5,088명 기타 1,520명으로 총 7,200명에 이른다.  

5.18민주화운동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군부독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작업을 위한 선례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국가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단체 및 사람들의 활발한 교류의 구심이 되었으며 여러국가의 민주화에 기여 하였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1년 5.18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를 주제로 거행되었으며, 이 땅의 민주화를 꽃피우기 위해 산화한 민주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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