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虛舟)의 철학
빈 배(虛舟)의 철학
  • 김동수
  • 승인 2020.05.17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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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올림픽 대회에 나가 마라톤, 권투, 레슬링, 유도, 태권도 등 주로 투기 종목에서 우승을 많이 한 적이 있었다. 이걸 두고 언론에서는 한국인들에게 헝그리 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 어떤 고통도 기꺼이 감내하여 그렇게 선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없음’, 곧 ‘비어 있음’은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릇이 비어있기 때문에 음식을 담아쓸 수 있듯이, 천지의 기운은 비어 있는 곳으로 흘러 그곳에 사람이 모이고, 재물이 모이고, 세상의 인심이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양에서는 차 있는 것보다 비어 있는 ‘허(虛)’와 ‘무(無)’를, ‘실(實)’과 ‘유(有)’보다 더 큰 덕목으로 여겨 왔다. 눈에 보이는 물질(色)과 텅 비어 없는 공(空)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불교의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공(空)사상도 그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나 천국이 저희의 것이로다‘도 다 지나친 욕심과 탐욕의 채움보다 비어 있음에 덕이 있음을 통찰한 역설의 미학이라 하겠다.

 중국 전국시대 장주(莊周)의 《장자(莊子)》라는 책에 <빈 배虛舟>?라는 글이 있다. ?장자가 평소 강에서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 했다.?그런데 어느 날,?장자가 여느 때처럼?눈을 감고 배 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배가 장자의 배에 부딪혀 왔다.?화가 치민 장자는 눈을 감고 생각을 했다. “무례한 인간이군,?내가 눈을 감고 명상 중인데 어찌하여 내 배에 일부러 부딪친단 말인가?”?

 장자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며 부딪쳐 온 배를 향해 소리를 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배는 비어 있었다.?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였다.?그저 강물을 따라 떠내려 온 빈 배였던 것이다.?순간 장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후에 장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만일 그 배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상처 입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화를 낸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워라. 화가 났을 때에도, 화로 대응하지 말고 이를 남의 일처럼 객관화시켜, 그 빈자리로 사람들이 자유로이 지나다니게 하라.

 돌을 강에 던지면

 가라앉지만

 배에 싣고 가면 물 위에 뜬다.

 나도 배(舟)가 될 수 있다면

 날아온 돌(石)도 흘러갈 수 있으리

 돌보다 크고

 돌보다 넓은 가슴으로

 너를 안고 갈 수 있다면

 가슴에 텅 빈 돌배 하나

 강과 함께 흘러갈 수 있으리

  - 김동수. 「석주(石舟)」 전문

 비어?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없다는 것이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천하 만물은?있음에서 나오고,?있음 또한 없음에서 나온다”(천하만들생어유 유생어무(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하였다. 이와 같이 비워두면 누군가가 채워주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 곧 천지자연 도(道)의 이치다.

 그러기에 비운다(空)는 것은 흔들리면서도(動) 흔들리지 않은 정(靜)이요,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없음(有無)의 세계이다. 화가 나도 가만히 있다 보면 사그라지고, 비어 있어도, 그 비어 있음이 곧 무언가로 채워져 가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 그것이 빈 배의 철학, 곧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 <시인/전라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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