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전북문학기행> 6. 노령작가의 소설 ‘거울’
<2020전북문학기행> 6. 노령작가의 소설 ‘거울’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5.17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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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의 푸른 물결사이로 그려보는 마을들
용담호에 수몰된 마을을 그리는 마음과 소설 속 남자의 고향 찾기가 겹쳐져
진안군 용담댐은 2001년 건립됐다. 이 과정에서 1개 읍 5면 68개의 마을이 수몰됐다 / 이휘빈 기자
진안군 용담댐은 2001년 건립됐다. 이 과정에서 1개 읍 5면 68개의 마을이 수몰됐다 / 이휘빈 기자

 진안군 용담호를 향하는 길은 철쭉꽃으로 빛난다. 철쭉꽃이 세상을 향해 꽃잎을 열면 벌들의 날개 소리는 짙어진다. 이 사이에에서 용담호 마주한 망향탑(望鄕塔)에 가까이 가면, 전경은 햇살에 빛난다. 파랗게 반짝이는 호수물 속에서 망향탑에 적힌 수몰된 마을을 상상으로 더듬으려는 노력은 헛되다. 이제 마을의 흔적은 안내판의 음각으로 그치고 푸른 물빛만이 담담하게 사람들을 맞는다.

 용담호는 2001년도 금강 상류의 다목적댐인 용담댐이 완성되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이 담수호는 금강 상류의 물을 모아 만경강 상류에 공급하고, 전주권의 생활용수를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1개 읍, 5면과 63개 마을이 사라졌다. 강을 따라 있는 마을과 망향비들만이 마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노령 작가가 2011년 6월에 출간한 소설집 ‘바람의 눈’에 실린 ‘거울’에는 소리를 듣는 남자가 수몰된 마을로 향한다. 남자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로 인해 사회와 직장에서의 노력은 허사가 된다. 그 허사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마주하러 가는 사내의 여행길을 작가는 침잠(沈潛)한 빛으로 그려냈다.

 남자가 향한 장소는 물에 잠겨가는 마을인데, 이 장소의 모티브는 상정면 수정리와 대덕산, 천반산 사이의 죽도다. 봄에 이 섬을 흐르는 물살들은 힘이 가득 차 있다. 이 사이에서 길이 끊긴 죽도에는 오래된 나뭇잎들과 새잎들이 섞이며 시간을 수놓고 있다.

진안군 정천망향의동산 망향탑은 용담호를 마주하고 있다/ 이휘빈 기자
진안군 정천망향의동산 망향탑은 용담호를 마주하고 있다/ 이휘빈 기자

 노령 작가는 용담호와 죽도에 대해 당시 신문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뿐 실제로 이 곳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으나, 죽도의 풍경은 흔들리는 바람과 강물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소설 속 간질과 이명에 시달리는 사내의 고충을 흘려보낼만한 풍경이다.

 사내는 섬에 가야한다는 여인과 함께 배를 타고 섬에서 아버지의 무덤과 유품을 찾는다. 무덤과 유품, 동생의 편지는 세월 속에서도 사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가 내려올 때, 여인은 스스로를 ‘기구한 운명’과 ‘죄인’이라고 말하며 흐느끼고, 둘은 사람 사라진 마을에서 밤을 지샌다. 다음날 사내는 유품인 단소를 만지며 간질을 앓던 아버지의 모습 대신 단소 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찾는 아버지의 모습을 찾고, 여인은 진통제 대신 사내가 자주 쥐던 거울을 받는다.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 시내의 옆자리에서 자신을 비춰보면 물결에 흔들리는 모습들이 있다. 이 모습은 소리와 녹음이 섞이며 우리의 지금 모습에서 지난 날을 헤아리게 한다. 용담댐에서 사라진 마을들이 물 아래서 침묵할지라도, 강과 숲의 소리는 옛 마을을 불러낼 것이다. 하여 용담호는 매끈한 거울이 아닌, 머나먼 마을의 흔적을 마주하는 이들의 마음속마다 비출 것이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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