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 재계약에 실직 두려워... 할 말도 못하는 경비원들
단기간 재계약에 실직 두려워... 할 말도 못하는 경비원들
  • 양병웅 기자
  • 승인 2020.05.14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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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전주시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경비원이 밀려든 설 명절 선물과 택배 물량을 분류하고 있다.   최광복 기자
기사와 관계 없음. 전북도민일보 DB.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올 때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혹시나 다음 달부터 나오지 말라고 할까 봐 전전긍긍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합니다”

최근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전북 지역도 ‘남의 일이 아니다’는 지적이 높다.

도내 아파트 경비원들 역시 열악한 작업 환경이나 갑질 문제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통상 경비원 채용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자에 해당하는 경비원들은 이 때문에 부당한 업무나 지시가 내려와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 도내 아파트 경비원들에 대한 처우개선 및 인권존중 등을 통해 더불어 사는 아파트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주시 덕진구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씨(70대)는 “종종 주차단속 시비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막말을 퍼붓는 등 일부 주민들의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입주민과의 문제가 불거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하는 걱정에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게 A씨의 하소연이다.

A씨는 “주민 불만이 접수되면 경비원들이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아도 시말서를 쓰게 되고 시말서가 쌓이면 징계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주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계약 기간 역시 최근 들어서는 6개월, 3개월 등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사소한 일로 주민과 부딪힐 수 없고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견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는 근무 평가 등을 통해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데 주민과 불화가 생길 경우 재계약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비 업무가 아닌 주차 관리나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화단 제초, 택배 보관 등 아파트 내부의 모든 일을 담당해야 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라고 A씨는 귀뜸했다.

전주시내 또 다른 아파트 경비원 B씨(70대)는 “아파트 내 주차 문제로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고 전후 사정을 말해줘도 막무가내다”며 “새벽 늦은 시간 택배를 찾는 주민들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경우도 적잖다”고 토로했다.

B씨는 그러면서 “10년 넘게 경비원 일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맞습니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이제는 습관이 돼 버렸다”고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피하거나 거절할 경우 자칫 재계약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기본 경비 업무 외 기타 잡무를 마다할 형편이 못 된다”고 말했다.

55세를 넘을 경우 최장 2년 이내에서 단기 근로 계약이 가능하다는 기간제법의 맹점 때문에 아파트 경비원들은 사실상 아파트 입주민들과 위탁 업체 앞에서 항상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북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소장과 아파트 입주자대표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비원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게 맞다”며 “하지만 입주민 개개인의 인식 개선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어서 고령의 경비원들을 갑질과 해고로부터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병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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