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76> 차, 밀수품의 시대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76> 차, 밀수품의 시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0.05.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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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밀수를 묘사한 판화

 영국에서 차가 밀수품으로 명성을 떨치는 시기, 영국 정부는 차 품질에는 관계없이 파운드당 5실링의 세금을 부과했다. 저급한 차 1파운드의 가격은 6~7실링으로, 당시 노동자들의 한 주 급료가 7~10실링 수준으로 볼 때 찻값이 어느 정도 고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네덜란드에선 같은 품질의 차를 파운드당 2실링이면 구입할 수 있었다. 정식으로 거래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했다. 차에 대한 높은 과세정책(1689년)은 차 밀수의 발단이 되었으며 불법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해안선을 따라 밀수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증가하였다. 새로운 차가 나오면 가정으로 배달까지 하는 등 밀수된 차의 인기는 계속되었고 유통 과정도 치밀해졌다.

 선장이 해외에서 구매한 차는 밤에 그 지역 노동자들에 의해 일정한 장소로 운반되었다. 때론 교회의 지하실 창고에 보관하기도 하였다. 수요가 확대되자 밀수꾼들은 섬에 차와 브랜디는 물론 운송수단인 말을 커다란 동굴에 보관하였다. 오랜 기간 차 밀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은 밀수꾼들을 오히려 감싸고 이들을 고발하는 것을 사악하다고까지 했다. 세관에게 들키지 않았던 이유도 말을 탄 경비들이 급습하는 때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밀수업자들은 동인도회사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고 차의 양을 늘리기 위해 위조(僞造)된 차를 만드는 방법도 유행하였다. 야생 자두잎, 감초잎, 모과잎, 한 번 사용한 찻잎, 다른 나무의 잎과 설탕 등을 섞어 위조된 차를 만들었다. 찻잎만이 아닌 다른 재료를 섞는 방법으로 차의 양을 늘려 이익을 취하였다. 영국 차 소비량의 3분의 2가 밀수품으로 추정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밀수는 성행하였다.

 위조된 차를 만들기 위해 녹반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제조 방법으로 차를 생산하는 제조업자들도 있었다. 청색의 염료 분말을 만들어 로스팅으로 마무리하기 전에 넣어 원하는 차의 색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유통된 차를 마신 영국인들은 복통을 호소하였다.

 중국의 차 재배지역에서 몰래 기술을 배워온 영국의 식물학자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은 책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영국인들은 늦게까지 차를 마신 후, 잠을 청하지만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다가 신경이 예민해지고 소화가 안 된다고 호소한다. 의사는 방문하여, ‘차’가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사실은 ‘금속성 물감(metallic paint)’이 원인 임을 안다.

 

 이처럼 차의 위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최고 품질의 차를 선호하게 되었다.

 1706년 토마스 트와이닝은 런던에 있는 ‘톰의 커피하우스’를 인수한다. 그곳에서 차를 판매하기 시작하는데, 커피하우스 출입이 금지된 여성들의 출입을 허용한다. 또한 차를 직접 보고 살 수 있도록 하였다.

 1784년 리차드 트와이닝은 피트수상에게 차 세금을 낮추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는 과도한 세금은 밀수만 장려하고 국민의 건강에 폐해가 된다며 과세의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1784년 차 과세가 폐지되기까지 밀수와 불법적인 제조는 그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렇듯 밀수는 차 과세가 한 몫을 담당하였다.

 판매상들은 19세기에 이르러 차를 직접 눈으로 보고 향을 맡고, 시음을 통해 만족한 후에 차를 선택 할 수 있도록 하는 소비자를 위한 판매 전략을 마련하였다. 차 밀수는 차에 대한 수요를 확대했고 훗날 차를 블랜딩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영국인의 일상에서 차는 필수품목으로 자리하였고, 밀수는 새로운 차 시장이 형성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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