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 강영환 시인의 '동거를 위하여'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 강영환 시인의 '동거를 위하여'
  • 강민숙
  • 승인 2020.05.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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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거를 위하여 

 - 강영환

 

 풀을 뽑으러 뜰에 나섰다

 잡풀이 까맣게 떤다

 뿌리까지 지우기 위해 호미를 거머 쥐고

 풀 앞에 쪼그려 앉는다

 전쟁하는 일이 그리 쉬울까

 풀은 힘이 세다 나도 그렇다

 새로 뿌리내리는 띠풀과는 화해가 힘들다

 잔디에 터를 잡는 일에

 반성하지 않고 덤벼드는 풀들에게

 마당 한 켠 내어 주고

 힘든 동거를 간청해 볼 수밖에
 

 

 <해설>  직장에서 은퇴를 하거나 대학 교직에서 퇴직한 노교수를 만나면 시골에 집필실을 마련했는데, 마당에다 잔디를 심어 가꾼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런데 잔디를 가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나 같이 고개를 내젓습니다. 시간만 나면 잔디밭에 잡풀을 뽑아주지 않으면 잔디밭이 아니라 풀밭이 된답니다. 

 시인도 틈만 나면 호미를 들고 마당에 나서지만 시인의 눈에는 풀이 까맣게 떠는 것으로 보였네요. 하지만 그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합니다. 풀은 뜯기고 밟혀도 끝내 뿌리까지는 잘 내주지 않을 뿐 아니라 호미날 보다 더 힘이 세니 ‘밟혀도 일어서는 민중’으로 곧잘 비유되곤 했습니다. 

 풀은 아무리 뽑아도 새로운 풀들과 함께 돋아나 파란 빛이 도는 얼굴로 돌아옵니다. 그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돌아서면 뽑아낸 자리에 새로운 풀들이 자라나니 풀의 힘을 어쩌지 못해,시인은 차라리 풀과의 동거를 결정합니다.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덤벼드는 풀들을 향해 눈을 찔끔 감고 마당 한 켠을 내 주며 힘든 동거를 합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하늘을 향해 뿌리 내리고 사는 생명에 대한 따뜻함이 깃든 시인의 마음자락이 아닐까요. 

 적당히 풀을 허용하는 마음으로, 풀 뽑기를 게을리 하면서 슬쩍 외면해 주는 시인.

 강영환 시인은 그 많은 시집들을 이런 마음으로 출간 했나 봐요. 풀은 낮게 엎드려 살아가기에 우리는 그냥 풀이라고 합니다.

 시인이나 농부가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며 슬쩍 눈 감아 주었기 때문에 세상의 오월이 더욱 싱그러워 지고 있습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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