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독립운동가 - 유찬희 선생과 두 아들 유기석·유기문 선생
5월의 독립운동가 - 유찬희 선생과 두 아들 유기석·유기문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0.05.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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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보훈
광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의열투쟁을 전개한 아버지와 두 아들

유찬희 선생은 1883년 8월 8일 황해도에서 출생하였다. 1913년 경 북간도에서 간민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9년 3월에는 조선독립기성총회와 충열대를 조직하였다. 1923년 12월, 중국 돈화현에서 수전(水田)을 개발하고 조선독립을 위한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동성노농공사(東省老農公司)의 간사(幹事)로 활동하였다. 이후 블라디보스톡,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으나 위암에 걸려 1930년 귀국,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별세하였다.

큰 아들 유기석 선생은 1930년 4월 상해에서 유자명(柳子明) 등과 아나키즘 단체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결성하고 의열투쟁을 촉구하였다. 동년 6월에는 천진에서 대한독립당주비회가 창간한 『한국의 혈』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안창호의 대독립당 결성 운동을 후원하였다. 1938년 김구(金九) 및 남화한인연맹원과 협력하여 일본 군함 출운환(出雲丸)호 폭침(爆枕)과 상해지역 일본 책임자 곡정지(谷正之) 공사의 암살을 시도하였다. 1943년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하여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1944~1945년 남경(南京)에서 광복군(光復軍) 제3징모분처의 대장으로 초모활동(招募活動)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중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1980년 별세하였다.

둘째 아들 유기문 선생은 1931년 11월 남화한인청년연맹의 의열투쟁조직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천진(天津)투탄의거’와 ‘육삼정(六三亭)의거’, 변절자에 대한 숙청 등의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1935년 5월 흑색공포단의 엄순봉과 이규호가 상해거류민회장 이용로(李容魯)와 친일파 옥과빈을 처단한 사건에 참가하였다. 선생은 체포되지 않아 소재불명(所在不明)으로 기소 중지되었으며, 이후 선생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위와 같이 유찬희 선생과 그의 두 아들 유기석․유기문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 희생한 부자(父子) 독립유공자이다.

정부에서는 세 분의 공훈을 기리어 유찬희 선생에게는 2010년 독립장을 유기석 선생에게는 2008년 독립장을, 유기문 선생에게는 2010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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