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이기는 힘 - “우리”
코로나19를 이기는 힘 - “우리”
  • 나종우
  • 승인 2020.05.07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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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부터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집단 발병하기 시작해 중국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 질환(코로나19)은 아직도 세계적으로는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2020년 4월 기준)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아 아직도 환자와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초기에 우리나라에 확진자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크게 걱정을 않는 태도로 우리나라에 대해서 약간은 비웃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을 입국 거부하는 나라가 100여국가가 넘었다. 정말 자존심이 상하여도 보통 상하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를 향해 비아냥거리던 나라들이 코로나19가 감염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맨붕(정신이 허물어져버린)상태에 빠져들었거나 빠져들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서 우리나라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앞 다투어 크게 보도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쳇말로 코로나19대처에 한국을 따라 배우자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고 보니 국민들은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그 바탕은 그 뿌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서양정신의 뿌리와 우리 한국정신의 뿌리를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은 고대로부터 해양 상업국가로부터 출발하였다. 상업의 바탕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시작된다. 여기에서 수평적 관계라는 것은 철저하게 ‘너와 나’라는 관계를 의미한다. 계약을 맺을 때 모든 것은 평등관계이지 나이같은 장유유서(長幼有序)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동양, 특히 우리 한국 같은 경우는 고대로부터 농업을 바탕으로 해서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농업이라는 것은 상업과 달리 패턴(pattern)이 존재한다. 예컨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추수한다는 기본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경험이라는 것이 법칙처럼 중요시 되고 따라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어른의 역할이 어떤 결정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에는 「가족」 이라는 구조가 깔려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족이라는 것은 작게는 한 집안의 가족도 있지만 범위를 넓혀보면 점차 지역사회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가족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세계관’은 ‘가족중심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일이나 좋지 못한 일이나 모두가 가족구성원 모두 함께 책임적인 존재로 그 명예가 따라 다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 잘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속의 「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 - 우리」는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일이 발생하여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로 부각이 되고 그 해결책도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 속에서의 한 구성분자로서 ‘나’라고 하는 존재를 인식하게 됨으로써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나’의 집이 아니라 ‘우리’집이라 표현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나라를 ‘나’의 나라가 아닌‘우리’나라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라고 하는 미증유(未曾有)의 사태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바탕에는 이러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서의 ‘우리정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어떤 힘든 일도 함께 극복해야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나라들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여지없이 자존심들이 망가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나라 대처방법이 더 돋보인 것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볼 때 국난극복의 힘도 ‘우리 함께’라는 정신이었다. 임난 당시 영남지방이 어려움에 처하자 우리 전북지역에서 우리도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식량을 모아 영남으로 보냈던 사실이 이러한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서 조금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정신이 조금씩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라는 아름다움에 ‘끼리’라는 잘못된 가지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정신이 오늘의 전통으로 새롭게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나종우 (원광대명예교수 · 전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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