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19> 金禮善(김예선)씨...군산시 보건소 선임지도원
[자랑스런 얼굴] <19> 金禮善(김예선)씨...군산시 보건소 선임지도원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5.2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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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낳아 잘기르자”부르짖기 26년

우리나라 家族計劃運動史(가족계획운동사)의 산증인이자 실천자인 金禮善씨(김예선·52).

 金씨는 현재 群山시 보건소 가족보건사업 선임지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962년 국가 공채 공무원으로 가족계획운동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金씨는 26년의 긴 세월 동안을 인구문제와 씨름하며 외길을 걸어왔다.

 1960년대에는 2.9%나 되는 엄청난 인구증가율을 끌어내리기 위해 金씨는 밤낮없이 부르튼 발로 뛰어다녀야 해.

 당시만 해도 인구문제의 심각성과 산아제한의 필요성에 대해 모두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때.

 “집집마다 방문하며 설득하다 좌절과 허탈감에 빠진 적도 수없이 많았어요. 그럴때는 돌아서서 남몰래 울기도 참 많이 울었지요” 金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감회에 젖는다.

 그후 가족계획운동이 1970년대 중반부터는 ‘두자녀 갖기운동’으로 전환되면서 인구증가율도 2.3%로 감소, 보람과 자신감을 얻었단다.

 그러나 아직 불임수술과 관련, 부부간의 의견충돌로 인해 겪어야 하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오직 사명감 하나로 매달렸죠. 참 억척스러웠던 때였어요”

 이러한 金씨의 억척이 모아져 1980년대 중반 들어서는 드디어 ‘한자녀 갖기운동’이 벌어지고 당초 1993년도 목표이던 인구증가율 1%계획이 5년이나 단축돼 현재 0.94%를 기록하게 되었다.

 金씨는 “지금은 상담자가 전화문의를 해오거나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껴요”라며 가족계획운동의 성공을 확신한다.

 맏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역할에다 선임지도원의 역할까지 1인4역을 담당하고 있는 金씨. 자랑스런 얼굴 金씨는 오늘도 한아름의 보람을 찾아 바쁜 길을 재촉한다.
  

 글 정량기·사진 김영호
 옮긴이 김재춘
 1988년 12월15일자 

 *지금은 0%대의 인구증가율을 보이며 인구증가를 위해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30년 전에는 가족계획운동으로 산아제한을 장려했었습니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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