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17> 李東元(이동원)옹...인간문화재 제14호
[자랑스런 얼굴] <17> 李東元(이동원)옹...인간문화재 제14호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5.16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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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가락에 보람을 심고

 “살날이 얼마 안남었는디 큰일 났고만…”

 자그마치 55년간을 장고와 함께 살아온 인간문화재 제14호 李東元옹(이동원·68·부안읍 서외리).

 설장고의 명인이면서도 건강이 허락치 않아 마음대로 장고채를 잡을 수 없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듯한 표정이다.

 李옹은 고향인 고창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거문고의 명인인인 신쾌동씨로부터 농악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장고채를 처음 잡았다. 이어 본격적으로 장고의 명인 金홍집씨에게서 사사 받은후 장고의 명인이 되기까지 험난한 가시밭길을 참고 잘 걸어왔다며 웃는다.

 李옹이 농악인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井邑농악단에 입단하면서 부터. 이후 井邑농악단은 10여년간 전국을 순회공연하며 호남농악의 진가를 마음껏 발휘했고, 마침내 66년에는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뒤 기예의 절정에 다다른 李옹은 扶安여성농악단과 扶安군 上西면 농악대를 조직, 전국순회공연을 갖고 갈채를 받았으며 전북농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외에도 재일교포 위문공연 등으로 한시도 쉴날이 없이 장고와 같이 살아온 李옹. 그래도 지금까지의 생애를 절대 후회한 적이 없다는 李옹은 다만 “농악에 미치다보니 빵점짜리 가장이 되어 지금도 자식들헌티 미안하구만”이라고 실토한다.

 언제나 귓가에 맴도는 설장고 소리에 흥이 겨워 나이가 드는줄도 몰랐다는 李옹.

 “이제는 몸이 불편해 생전에 장고채를 잡을 수 있을까 걱정이여”

 기자의 손을 잡는 할아버지의 두 눈엔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었다.

  
 글·사진 차동주
 옮긴이 김재춘
 1988년 1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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