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치유력을 높이는 건강한 삶의 지혜
자가치유력을 높이는 건강한 삶의 지혜
  • 채병숙
  • 승인 2020.05.03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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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더욱더 춥게만 느껴졌던 매서운 찬 겨울바람이 늦게까지 기승을 부렸지만, 이제 겨울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찾아온 봄기운에 의해서 결국 고개를 숙였다. 비가 온 뒤 땅은 더욱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지금의 코로나19는 물론 또 미래에 올 수 있는 제2의 코로나19에 대항할 수 있는 자가치유력을 높이는 건강한 삶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특히, 우리 인간은 화성탐사 성공 및 동물복제기술 등 최첨단 과학이 발달한 현 시점에서, 온 세계 사람들은 우리 눈으로도 볼 수 없는 매우 작은 낯선 바이러스에 의해 허둥대며 여지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또한 의료기술의 선진화와 최상의 보건의료체계를 갖추었다는 선진국들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의 벽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의료붕괴에 따른 높은 치명률을 보여주었다.

 온 세계는 그동안 경제적 성과를 높이기 위해 너도나도 앞다투어 세계화로 향하여 각 국가의 문턱을 낮춰왔다. 선도적인 첨단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은 곧 경제발전과 국력을 낳았다. 우리나라 국민 또한 근면과 성실을 모토로 앞만 보고 달려왔고 OECD 국가 중 상위를 차지하는 오늘의 경제적 성과를 이루었다. 우리는 전염성 병원체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데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경제적 선진문명이 큰 무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경제력을 지닌 선진국에서도 생명은 코로나19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았고, 이와 같은 위기 속에서 우리는 건강한 삶의 관점에서 어떠한 삶이 잘산다는 것인가에 대하여 새롭게 의문을 던져보게 된다.

 우리는 의술도 약물도 결국 타고난 자가치유력을 높이고 항상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도시문명 속에서 자가치유력을 높이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멀리하면서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을 점점 잃어가는 등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인적자원을 강조하는 경쟁사회에서 끝없는 욕망에 의해 교감신경은 과하게 흥분되어 스트레스에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중독이 되어 안락한 가정을 희생하고 주말까지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는 일하는 밤과 일하는 주말로 소중한 인생을 채우고 있다. 일터로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서야 귀가하는 하숙생 같은 삶에서 따뜻한 온기를 주는 가족들 속에서의 안식은 사치스럽다. 높은 콘크리트 빌딩 숲에 갇혀 찬란한 햇살을 만끽하는 대신 비타민D를 복용하고, 생명력을 높이는 흙과 나무를 전혀 접하지 않고 하루를 마친다. 웃음을 잃어가는 얼굴로 굳어진 지 오래고 어쩌다 웃음짓는 자신의 표정이 낯설기만 하다. 음악은 소음이 되고, 가끔 하는 명상이나 운동은 시간낭비라고 생각되기에 즐거움보다는 의무가 앞선다. 불이 꺼지지 않는 까만 밤이 없는 상태에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피로는 점점 쌓여만 간다. 매일 차를 운전하는 중에도 내일 일을 걱정하며 여유 없는 조급한 마음으로 차 안에서도 어깨에 짐을 잔뜩 짊어진 채 다리는 쉬지않고 달리고 있다.

 따스한 어느 봄날 오전에, 바람에 흔들리는 신록으로 물든 나무그늘 아래서, 햇살이 비치는 연두색 풀밭에 앉아 톱으로 쓰러진 나무를 가볍게 밀고 당기면서 여유롭게 자르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는가? 거리를 걸으면서 흘러나오는 헨델의 ‘울게하소서’ 오페라를 듣고, 나약함을 들어냄이 카타르시스를 가져오고 있음을 느꼈는가? 저기서 들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에 어느덧 나도 모르게 따라 웃고 있지는 않았는가?

 오늘 나는 참새가 날아다니는 창밖의 정원을 보며 허밍으로 노래 부르면서 차 한잔과 함께 한껏 한가로운 여유를 부리고 싶다.

 채병숙<우석대학교 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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