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4) 유승도 시인의 ’사람도 흐른다’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4) 유승도 시인의 ’사람도 흐른다’
  • 강민숙
  • 승인 2020.05.03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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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도 흐른다

  - 유승도

 

 사람이 바뀌었네요?

 정년퇴직했어요

 

 비가 올 때도 왔었고 눈이 올 때도 왔었던 전기 검침원이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왔다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잘 좀 얘기해달고 하더니 나이는 어쩌지 못했나 보다

 얼마 전엔 형님이 정연퇴직을 했다며 기념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내왔다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였다

 나이라는 놈이 나도 슬프다 물러날 일도 없는 처지이면서 그렇다 누군가 사라지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

 

 <해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도 오던 전기 검침원이 어느 날 바뀌었는지 오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왔나 봅니다.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잘 좀 애기해달라고 당부까지 하던 사람이 나이만은 어쩌지 못한 모양이이죠.

  내가 유 시인을 처음 알게 된지도 벌써 이십 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영월군 김삿갓 뒷산에서 흐르는 물이 집 옆으로 흘러갑니다. 그의 집 옆으로 흐르는 물은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흐르지만 때로는 흙탕물일 때도 있고 맑을 때도 있겠지요. 양이 많을 때도 있고 졸졸 흐를 때도 있을 것이고요.

 우리네 사람살이도 그렇지 않은가요. 직종이 없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이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흐름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 흐르지 않는 게 있을까요. 누군가는 자기가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 곁에 금방까지 멀쩡하게 있던 사람도 홀연히 사라지잖아요. 어느 누군가가 자리를 비우면 균열이 생길 것 같지만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세상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잘 좀 애기해달라고 당부하던 사람이 오지 않아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생각하면 그렇게만 받아들일 일도 아닙니다. 그 또한 흐름일 테니까요.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개개의 생명이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도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오는 변화가 조금은 가볍게 받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요즘,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라도 목청껏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강민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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