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담은 김명관 고택(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지혜를 담은 김명관 고택(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 임보경 역사문화원 대표
  • 승인 2020.04.27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파트가 즐비한 현대사회의 건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하천을 경계로 좌우의 살림하는 집들의 환경에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남쪽을 향하는 아파트들은 낮은 구릉지대의 공원안에 즐비한 나무숲과 꽃들이 적어도 세계절을 볼 수 있고 잔디의 여유로움과 그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현대판 풍수지리상의 구조인가보다. 하천을 건너고보니 집들의 방향도 동서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사이사이 비좁게 심어진 나무들만이 달리는 차바퀴의 소음에 시름하고 있는 형상이다.

 살림하는 집에도 자연을 담을 자격의 구분이 있나보다. 지혜를 담아 독립된 공간이면서도 공존하며 자연을 섬기는 정읍시 산외면에 있는 김명관 고택을 소개하고자 한다.

 벚꽃의 흩날림속에 연노랑의 나뭇잎 새순이 서로들 키재기하듯 돋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삼아 뒤로는 창하산이 후덕하게 감싸고 두 시선이 머무는 곳엔 동진강 상류의 명당수가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중국대륙에 연결되어 겨울이면 시베리아기단의 북서계절풍 영향을 받는다. 그 바람을 막아줄 산은 사람만이 아니라 농작물의 찬바람까지 막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집앞에 물이 흐르니 농작물에 필요한 물도 편리하게 끌어다 사용하고 생활용수로도 그 가치를 요긴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선사시대부터 배산임수안에 우리가 사는 터를 마련하면서 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보는 형상속에서 살아가는 이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었던 것으로 본다.

 정서적 안정까지 주었던 그곳에 김명관 고택이 과거와 현대를 담고 있었다. 1971년 5월27일에 국가민속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된 고택은 99칸으로 조선시대 정조 8년(1784)에 김동수의 6대 할아버지인 김명관이 세운 고택이다. 행랑채와 사랑채 그리고 안채와 안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된 고택에서 그는 유언으로 후손들에게 이 집을 떠나지말라고 당부했다 한다. 유언대로 후손들은 고택을 지키며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리 오너라” 부르니 상류층의 집답게 솟을대문이 오랜세월을 말하듯 조심스럽게 열렸다. 솟을대문을 지키는 행랑채를 슬쩍 기웃거려보다가 일자형으로 주인장의 마음을 표현한 사랑채가 단아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바깥주인의 성품이 보이듯 건축물이 주는 편안함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바라보는 팔작지붕의 화려할 것 같지만 검소함이 흐르는 기둥과의 배열 등이 정갈하게 세련되면서도 소박했다. 또한 처마에서 흐르는 간결한 선율의 미는 깔끔했다. 이 집을 찾는 이들 또한 바깥사랑채를 마주 대하는 순간 심신의 편안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마당에 들어서니 적당한 바람과 햇볕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였다. 행랑채에 딸린 문간방과 아담한 마루에 부엌이 있어 청지기(집사)와 하인이나 마부 그리고 등짐장수들이 묵을 수 있는 구조이며 마구간과 곳간, 외양간도 겸하고 있어 아흔아홉칸의 넉넉함도 엿볼 수 있었다.

 마당은 우리 선조들에겐 모임의 장소였다. 엉덩이를 실룩실룩하며 마당을 쓰는 마당쇠도 수확한 곡식을 나르는 하인들의 분주함도 소통하길 바라는 손님들의 방문도 집 주인장은 환하게 웃으며 인자함과 반가운 마음으로 사랑채를 지켰을 것이다.

 행랑채와 바깥사랑채를 보았듯이 유교사회의 신분사회의 구별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었고 바깥사랑채를 지나 담장을 넘으니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에서 남녀의 구별을 불 수 있었다. 남녀가 유별한 조선사회는 부부일지라도 다른 공간에서 거주했기에 부부가 만날시에도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있는 여종들이 기거하는 안행랑채를 지나다니기에는 좀 부끄러웠을 것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비밀통로였다. 이 고택은 건물을 샤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린 듯하다.

 안채에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 공간과 며느리 공간이 분리되어 각자의 부엌에서 한끼의 식사를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크기와 구조는 같지만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해 온 선조들의 지혜에서 요즘 말하는 고부간의 갈등을 최소화한 것으로 본다. 성격과 입맛이 다른 개인이 유교적공동체 틀속에서 위아래의 구분을 갈등이 아닌 조화를 이룬 건물의 구조속에서 대가족의 구성원을 순탄하게 유지하는 비결이었을 것이다.

 한편에는 낯설지만, 여자들의 공간을 더 자유롭게 해준 건물이 있다. 그것은 안사랑채이다. 여자들의 사랑채인 안사랑채는 남자들만이 가졌던 사랑채를 여자들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라 더 가치가 인정되었다.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에서 출산하여 산후조리를 하거나 여자들의 일가친척이 왔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곳으로 찾는 이들을 유쾌하게 할뿐만 아니라 편안한 안식처로 사랑을 받았다. 서로 유대감은 인정해주면서 독립성은 존중해 주는 건축속에서 사려깊은 김명관의 손길들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상류층의 신분답게 도덕성의 검소함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지혜를 표현한 고택에서 우리는 핵가족화와 이웃간의 소통의 불감증이 짙어가는 현대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빠르고 뛰어난 기술이 아닌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 사는 사람의 입장을 말해주었다. 아울러 건물 하나에도 대충이 아닌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지혜로서 더불어 가는 삶의 공존방식을 김명관 고택은 조용히 답하고 있었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