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북문학기행> 4. ‘김저운 단편소설 - 연緣’
<2020 전북문학기행> 4. ‘김저운 단편소설 - 연緣’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4.26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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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흔적이 사라진 사이로 소리꾼의 이야기꽃 핀 전주한옥마을·남부시장
전주한옥마을에서 상업적 용도 대신 사람 사는 흔적이 남은 집을 찾는 것은 힘들었다. 사진은 Plan C 건물/이휘빈 기자

 전주한옥마을 번화가에서 사람 사는 냄새 품은 가정집을 찾기에는 너무 늦었다. 무엇보다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시민들이 맘 편히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웅장한 안내문과 잘 닦여진 도로, 아름다움이 선명한 현대적 한옥들과 다양한 안내문, 한복대여점, 쵸코파이, 문꼬치, 슬러시, 아이스크림 판매점등이 어우러지며 이질감을 풍긴다. 옛것은 급하게 재단되고 상품성이 원주인처럼 눌러앉았다. 한때 이 곳에서 출근하고 평상에 앉아 수다 떨고 밥 먹고 잠들던 이들의 모습은 새 한옥빛으로 지워졌다.

 김저운의 소설집 ‘누가 무화나무꽃을 보았나요’에 실린 ‘연緣’은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사이서 미묘한 조율을 보여준다. 한때 한옥마을에 살았던 명창이 남부시장 낡은 술집에서 밤마다 ‘소리’를 부른다는 것에 ‘그럴듯함’을 느끼는 이유는 한옥마을이 더 이상 소리하기 좋은 곳도 아니며, 일상 생활을 꿈꾸기에는 지난하기 때문이다.

 김저운 작가는 “한옥마을이 지금처럼 변화되지 않았을 때, 풍남동 어느 모퉁이에 낡은 한옥이 한 채 있었다. 당시는 빈집이었다. 빈집은 많은 상상력을 가져오지 않던가. 어쩌면 과거에 주막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면서 자연히 소리꾼 여자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전주시 남부시장은 현대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이 곳을 찾는 손님들도 있다/ 이휘빈 기자
전주시 남부시장은 현대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이 곳을 찾는 손님들도 있다/ 이휘빈 기자

 한옥마을의 상점들 사이에서 사람 사는 집 찾기는 난감했다. 그나마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은 ‘Plan C’다. 이 건물은 한옥과 적산가옥의 형태가 넌지시 섞여있었다. 1960년부터 1990년대까지 한옥마을은 적산가옥과 낡은 한옥들이 섞여 있었다고 장기 두는 노인들이 얘기했는데, 그 흔적이 번화가 옆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이 외에 살림집들은 전주 향교 근처와 전주천 너머의 서학동이지만, 소설 배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가는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전주’ 하면 ‘소리’인데,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볼까 구상하다가 그 집을 소환해냈다. 물론 그 집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로 들어선 후였다. 한옥마을도 이미 예전처럼 한가롭지 않게 되었고…”라고 말을 줄였으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난한 소리꾼의 모습을 형상화하려면, 한때 한옥마을 모퉁이에서 살다가 남부시장 안으로 밀려들어 온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며 남부시장의 연결점을 밝혔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오후의 남부시장은 고요했다. 국내시장백과에 따르면 조선시대, 전국에 장이 개설되는 초창기부터 많은 시장이 문을 열었고, 전주성 4개의 성문에 열리는 시장 중 남문장과 서문장이 큰 시장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남문장은 시장의 현대화를 위해 1968년 11월에 착공해 1969년 2월, 870평에 141개 점포로 구성된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시장 건물 안에서는 당연히 ‘나무가 있는 낡은 한옥’을 찾을 수는 없다. 잡곡을 파는 노인에게 물으니 “그런 옛집 들은 진즉 다 바뀌었다”고 해 말 붙이려 산 콩 한됫박이 무거웠다. 그러나 과일을 둘러보는 나이든 모녀의 모습에서 소설의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설 속 소리하는 모녀는 ‘박복한 인생’ 등을 들먹이지 않고 한옥마을서 남부시장으로, 그리고 어은골로 몸을 숨겼다. 이들의 발길은 전주천을 따라서 흐르는데, 이 흐름은 비단 전주나 한국을 말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수순이다. 옛 주민들이 밀려난 곳에서는 돈 냄새가 옛 주인 행세를 세련되게 다듬고 방긋거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마을잔치에서 손녀와 함께 우리 소리를 하는 은소희 명창의 모습은 세월과 소리가 함께 섞인 자연스러움이 배었다. 그러나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이들이 명창을 찾아 호들갑을 떤다. 명창이 그들을 향해 “나는 이미 소리를 버린 지 오래여. 소리로써, 버리는 연습을 하며 살아왔응께”라고 말하는 구절은, 마을 잔치에서 손녀와 노래 부르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남을 것을 선언한다. 이들의 일상이 지켜질 수 있을까, 되뇌다 책과 발걸음을 닫았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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