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마이산, 그 신비로운 명산의 품안에서
진안 마이산, 그 신비로운 명산의 품안에서
  • 정영신 전북소설가협회 회장
  • 승인 2020.04.23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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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밖에 기봉(奇峯)이 떨어졌으니/뾰족한 한 쌍은 마이(馬耳)와 같구려./ 몇천 길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연무(煙霧) 속에 정정(亭亭)하게 서 있네./우연히 중동(重瞳)의 돌아봄을 입어/훌륭한 이름 만고(萬古)에 전하게 되었다네./중원(中原)에도 이런 이름 있지만/명실(名實)이 혹 비슷한지 몰라라./조물주의 조화는 알 수가 없는 일/길이 홍몽의 태초를 간직했구려./…… 멀리 쳐다보려니 고개를 돌릴 수 없어/문짝을 밤새도록 열어젖히고 지샜네./어찌하면 옥지(玉枝)에 의지하여/높이 놀아 풍진(風塵)에서 벗어나 볼까./이틀 밤을 쇄석암(碎石菴)에 머물면서/올라가 봉우리 밑의 물 움켜왔는데/청동(靑童)과 함께 짐작하여/방촌(方寸)의 숟갈로 떠서 마셨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정의와 의리를 중시했던 김종직(1431~1492)이 쓴 마이산에 관한 시이다. 마이(馬耳)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 시를 보면 하늘 밖에 기이한 산봉우리가 떨어졌으니, 뾰족한 봉우리 두 개가 말의 귀와 같고, 우뚝 솟은 미끈한 바위산이 너무 가파르고 험해서 맨몸으로는 오를 수가 없기 때문에 몇천 길이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산안개 속에 우뚝 서 있다고 했다. 5행의 중동(重瞳)은 눈 하나에 눈동자가 둘인 것을 이르는데, 순(舜)임금도 눈동자가 둘이었고, 진나라의 항우도 중동(重瞳), 눈동자가 둘이어서 이들이 관심을 갖고 바라본 말은 모두 천리마(千里馬)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늘로 치솟은 암마이봉, 숫마이봉, 진안 마이산은 보통 평범한 말이 아닌 한걸음에 천리를 뛰는 신이(新異)한 천리마의 두 귀를 닮은 형상인 것이다. 이 시에서처럼 마이산은 신의 조화로 말의 상(相)을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입고, 오롯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이 진안 땅에 고귀한 천리마의 두 귀가 신의 공간, 드넓은 창공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것이다. 그래서 그 신비로운 신의 숨결이 스민 마이산(馬耳山)이라는 이름을 만고(萬古)에 대대손손(代代孫孫) 전하도록 이미 하늘의 계시가 진안 땅에 내려져 있었다.

 해발 300미터, 진안고원의 중앙에 위치한 세계적인 명산 마이산, 김종직의 시 안에서 이 마이산이라는 이름은 중원(中原) 즉 중국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진안 마이산과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으며, 조물주의 조화는 알 수가 없어서, 오래도록 홍몽, 즉 천지가 개벽할 때 아직 음양으로 나뉘기 전인 그 처음 그대로, 그 어떤 물리적인 손길도 닿지 않은 태초 그대로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마이산의 신성함을 찬양하였다. 선산 김 씨 김종직, 그는 마이산의 풍광과 영험함에 감탄하여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잠시 잠깐도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밤이 새도록 문짝을 열어 놓고, 마이산 두 봉우리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고, 그 짧은 시(詩)안에 당시의 감회를 드러내고 있다.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 병조판서 등의 관직을 지낸 김종직은 어머니 박 씨의 본가가 있던 밀양에서 태어나 밀양에서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지금의 경상도 구미와 상주, 밀양 등에 연고가 있었지만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라도의 명승지에 대해 두루 답사를 했을 것이고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특히 주역 등을 섭렵하며 도학에 깊은 식견이 있었는데, 그래서 더 말없이 충직하게 바위산으로 우뚝 솟아 언제나 변함없이 단단한 의리로 뭉쳐, 그 자리에 늘 서 있는 두 바위산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더 아꼈던 것 같다. 이 시를 좀 더 음미해 보면, 김종직은 그 당시 지금의 화엄굴로 추측되는 쇄석암(碎石菴) 바위굴 안에서 이틀이나 머물렀고, 마이산이 품고 있는 이 진안고을이 올바른 사고를 가진 백성들과 지도자에 의해 흉한 액이 없이 태평성대가 지속하기를 경고하고 기원했다. 이 시의 말미에 ‘어찌하면 옥지(玉枝)에 의지하여/높이 놀아 풍진(風塵)에서 벗어나 볼까.’라고 했는데, 이 옥지(玉枝)는 동방삭(東方朔)이 서쪽 나한국(那汗國)에서 작은 진주를 닮은 열매가 바람이 불면 옥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성풍목(聲風木)이라는 나무 열 그루를 한무제에게 진상했고, 한무제는 그 나무를 한 가지씩 신하들에게 하사를 했는데 그 가지를 옥지(玉枝)라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액운이 있는 자의 나뭇가지에서는 땀이 나고, 죽을 사람이 지닌 나뭇가지는 부러졌다. 하지만, 노자나 요임금 때에는 700년이나 3천 년이 지나도 땀이 나거나 부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이나 태평성대를 이룬 왕대에는 이 옥지에 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산은 곧 그 고을을 감싸는 따스한 품이다. 진안고을 그 신령스럽고 신성한 마이산에 또다시 동풍이 불고 그 바람을 타고 옥지(玉枝) 한 가지가 내려왔다. 길흉을 예견하는 이 옥지(玉枝)에 부디 땀이 흐르거나 그 귀한 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저 고귀한 마이산에 흠이 가지 않고, 높고 깊은 하늘의 뜻이 서린 마이산의 품 안에서 태평성대를 이루기를 바라본다.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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