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에 산다] (1) 사랑과 봉사의 화신, 왕궁복지원 金信基(김신기) 박사 부부
[보람에 산다] (1) 사랑과 봉사의 화신, 왕궁복지원 金信基(김신기) 박사 부부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4.2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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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형이란 저주받은 병마와 싸워 이긴 ‘人間勝利(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건만 싸늘한 사회의 눈총이 역겨워 끼리끼리 모여 알찬 삶을 누리는 음성나환자촌.

 상처투성이인 이들의 마음과 몸을 어루만져주며 가슴마다에 사랑을 심고 있는 부부의사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王宮福祉園(왕궁복지원)내 한일기독의원 원장 孫信實(손신실·54)씨와 남편인 복지원 진료소장 金信基(김신기·59)박사다.

 전주에서 완주군 삼례읍을 지나 2km여 지방로를 달리면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한 왕궁복지원(원장 尹龍圭(윤용규)·익산군 왕궁면 구덕리 산28·구 益山농장)이 있다.

 우리나라 음성나환자 정착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곳에는 익산농장(669가구 주민 2,040명)과 金吾(금오)농장(227가구 주민 734명) 新村(신촌)농장(69가구 주민 261명) 등 3개 농장 주민 3,035명이 살고 있다.

 ‘인술의 화신’인 부부의사가 개원의 생활 24년을 청산하고 일반의 싸늘한 외면속에 가기를 꺼리는 이곳 나환자촌에 십자가를 지고 자원한 것은 1985년 2월.

 1976년 7월 정부가 한국기독교구라회와 일본기독교구라회의 지원으로 설립한 한일기독병원의 제4대 원장으로 부인 孫씨가 먼저 취임하고 이어 남편 金박사도 참여, 나환자들과 한가족처럼 지내며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인술의 꽃을 피우고 있다.

 “기독교 신앙과 로타리클럽의 봉사정신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들 부부가 하루에 돌보는 복지원 음성나환자는 줄잡아 1백여명. 과거 나병의 후유증으로 불구도가 심한 노인환자들의 치료가 주된 일과이고, 틈나는대로 인근 왕궁면민들의 진료도 하고 있다.

 과거 나병의 병력을 가진 소위 1대 환자부터 3대까지가 함께 살고 있는 이곳 환자들의 병세는 전염성은 전연 없지만 나병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고통을 호소하는 60세에서 90세 사이의 노인환자만도 36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기형적인 불구환자들로 신경마비가 심해 수시로 통증을 호소, 신경통약을 자주 복용해야하고, 손발이 보기 흉할정도로 뭉턱 잘린 상처를 매일 치료해 주어야 한다.

 “일명 ‘한센’병으로 불리는 나병은 이제는 피부병에 불과, 3주일이면 완치되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전혀 전염이 안되고 있으나 나환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완고하다”고 말한 金박사는 “완치된 환자의 완전한 사회복귀”가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 통념상 고소득층으로 분류되는 개원의 생활을 미련없이 청산하고, 이곳 정착촌에 자원한 金박사는 1952년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全州 예수병원에서의 수련의 생활을 거쳐 일반 외과의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역시 의사였던 선친(金병수씨)의 대를 이어 三山(선친의 호)의원(이리시 중앙동 2가 소재)으로 개업한 金박사는 61년부터 85년까지 24년 동안 어려운 환자에게 무료시술을 해주는 등 인술의 모범을 보여 지역주민들의 깊은 신뢰를 받아왔다.

 천성이 돈을 모르는 소탈한 성격에 등산, 테니스, 조기축구 등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며 “가끔씩은 정착촌 나환자들의 집에 초대돼 그들과 술을 대작하며 즐기는 것이 더없이 기쁜일이다”는 金박사는 예의 그 호방안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국제로타리클럽 367지구 회원이기도 한 金박사는 이곳 정착촌에 발을 들여 놓게 된 동기를 “70%는 기독교의 신앙심에, 30%는 로타리클럽의 봉사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의지는 사실상 결혼전부터 시작된다. ‘60세 부터는 모아온 재력을 바탕으로 사회봉사를 실천하며 살자’는 것이 이들의 ‘결혼언약’이었기 때문.

 로타리클럽 367지구 총재 신현근(辛鉉根)씨는 “金박사 부부는 개원의로 남아 있으면 수백만원의 수입을 올릴수 있는데도 이를 마다하고 복지원에서 한달에 겨우 60만원 정도를 받고 봉사하고 있다”며 “요즘 돈에만 눈이 팔려 인술을 외면하는 일부 의사들에게 인술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金박사부부를 도와 간호원역까지 1인2역을 담당하고 있는 복지원 사무국장 유정배(柳正培·51)씨도 “이곳 주민들의 건강을 내몸처럼 돌보고 있는 이들 부부는 가히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릴만 하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소록도에서 왔다는 양로원 독신자 숙소의 鄭기덕 할머니(87)는 “하루에도 몇백번씩이나 건강을 살펴주고 상처를 싸매주는 이분들은 하늘이 내려보낸 천사”라며 “감사하다”라는 말만 연발했다.

 
 1988년 11월22일 창간호 게재
 김화택·정회창 記
 김재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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