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2) 박미산시인의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2) 박미산시인의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4.19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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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백석 시 풍으로

  박미산

 

 경복궁 지나

 금천시장을 건너오면

 흰 당나귀를 만날 거예요, 당신은

 꽃피지 않는 바깥세상일랑 잠시 접어두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벚꽃을 바라보아요

 뜨거운 국수를 먹는 동안

 흰 꽃들은 서둘러 떠나고

 밀려드는 눈송이가

 창문을 두드려요

 펄떡이던 심장이 잔잔해졌다고요?

 흰 당나귀를 보내드릴게요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지낸

 푸릇푸릇했던 당신의 옛이야기를

 타박타박 싣고 올 거예요

 흰 당나귀가 길을 잃었다고요?

 바람의 말과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오세요

 불빛에 흔들리는 마가리가 보일 겁니다

 우리 잠시, 흰 당나귀가

 아주까리기름 쪼는 소리로

 느릿느릿 읽어주는 시를 들어보자고요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봄 같지 않은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몽글몽글 피어나던 벚꽃도 눈송이처럼 하르르 하르르 서둘러 떠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습니다.

 펄떡이는 심장을 안고 백석, 이상, 윤동주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경복궁역 뒤 서촌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세요. 혹시라도 오실 수 없다면 흰 당나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흰 당나귀는 당신을 등에 태우고 바람의 말과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작은 오두막에다 데려다 줄 겁니다. 불빛이 흔들리는 작은 오두막에서 우리는 바깥세상 같은 건 잊고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지낸 푸릇푸릇했던 당신의 옛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그 옛날 청년 백석이 노래했던 뜨거운 국수를 먹으며 자야와의 사랑을 눈 꽃잎 한 장, 마음 이파리 한 장에 담아보아요.

 깊은 밤이 되면 나타샤를 기다리는 흰 당나귀가 아주까리기름 쪼는 속도로 읽어주는 시도 들려올 것입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북두칠성을 함께 바라보고 꿈을 꿀 수 있는 그곳, 서촌에서 흰 당나귀를 만나 보십시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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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빈 2020-04-21 09:36:03
백석시인의 마음으로 읽어보니 나타샤가 벗꽃잎 머리에 이고 느린 걸음으로 올것만 같습니다. 멈추어 있던 봄을 느끼게 해주는 시 잘 감상했습니다.
"가나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첫연
박문희 2020-04-20 07:48:34
이곳 전북도민일보에서 흰 당나귀를 먼저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