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작설차에 대한 반가운 마음
성종, 작설차에 대한 반가운 마음
  • 이창숙
  • 승인 2020.04.12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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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74>
봄에 핀 찻잎
봄에 핀 찻잎

 차에 관한 기록 중에 왕과 관련된 기록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그중 조선의 9대 국왕 성종(成宗, 1457~1494)의 시문 중에 차와 관련된 몇 편의 시가 있다. 본래 학문을 좋아하고 호탕한 성품을 지닌 왕으로 경연에 나가면 해가 저물 때까지 성실하게 경연에 임했다고 한다. 경연에서는 대신과 삼사가 학문뿐 아니라 현안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논박하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종이 직접 토론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양자의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이끌었다. 성종은 신하들의 자유로운 토의와 의견 조정을 용인하고 보장하면서도 왕의 결정권을 잃지 않는 등 균형감을 갖었다. 이 당시 경연은 교육기관이었으며 현안문제를 협의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른바 ‘경연정치’를 하였다.

  그는 토론을 통해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도록 설득하고 교화하며 치유하는 정치를 제시하였다. 또한 홍문관을 언관화하여 비중을 확대했으며 언론기관으로서 영역을 넓혀갔다. 그의 경연은 정치와 언론기관의 영역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서 치적(治績)이 되고 있다. 시문 창작에도 활발하였던 성종은 중국차 보다는 우리나라 영호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작설차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차를 보내온 것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차 산지인 영남지방에서 작설차와 인삼 다섯근을 보내와 이에 반가운 마음을 글로써 보답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영남의 작설차를 매우 좋아하여,

  자주 화로에 달여 마시니 단사(丹砂)보다 뛰어나네.

  어찌하여 북원(北苑)의 가명(佳茗)을 구하고자 하는가,

  차라리 호남에서 자라는 차순을 따는 것이 낫네.

  한잔의 차를 기울이니 양 겨드랑이에서 가벼운 바람이 일고,

  몇 자루의 선향(線香)이면 모든 꽃을 능가하네.

  술이 깨어 갈증을 없애려고 차로서 수없이 치료하고,

  손을 멈추고자 하여도 자주 마시게 되는구나.

 

  성종은 영남지역에서 생산되는 작설차를 달여 마시니 신선이 먹는 단약보다 뛰어나며 멀리 중국 북원의 유명한 차를 구하기보다는 우리의 호남 땅에서 자라는 차순을 따서 차를 만들어 마시는 편이 훨씬 좋다고 말한다. 호남에서 자라는 찻잎으로 만든 차 한잔을 마시니 양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일고 몸이 가벼워져 나는 듯하다고 표현한다. 또한 몇 자루의 선향을 곁들이면 모든 꽃을 대신한다고 하였다. 마지막 구절의 손이 자꾸가서 마시게 된다는 것으로 보아 차는 술을 마시고 난 뒤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특효가 있는 듯하다.

  고요한 밤에 작설차를 마시며 마주하고 있는 이의 자태는 보이지 않고 차의 청아함만 있다는 “막운(寞云)”이라는 시가 있다. 아마 늦은 시간에 다실에서 왕비와 마시는 작설차를 칭송한 듯하다.

 

  “차의 색이 배꽃 같지만 차의 맛은 더욱 뛰어나고, 옥천의 골짜기 우물물로 마신 차 자꾸 당기네. 아무리 솔향이 나는 막걸리라지만 동료와 같이 마실 필요가 있겠는가. 작설차 청아한 그 향기 치아부터 맑아지고,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직 이르고 작설차 아무리 많이 마 셔도 청아한 맛과 향기 뿐이네”

  모두 차 산지에서 올라온 작설차를 마시며 읊은 시이다. 호남에서 만든 작설차는 중국의 명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내용으로 보아 우리 차 사랑이 컸던 것 같다. 평소 술을 즐긴 성종은 술을 즐긴 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작설차를 많이 마신 듯하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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