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전쟁을 위한 통합 노력이 일궈낸 결실
독립전쟁을 위한 통합 노력이 일궈낸 결실
  • 윤상원 전북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4.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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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특집)

홍성덕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다만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경험에서 좀 더 큰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3.1운동을 실질적인 독립전쟁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으로 본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1919년 4월 11일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곧바로 간도의 독립군 부대들과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상해 임시정부와 연해주 대한국민의회가 통합하여 수립된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선임된 이동휘는 취임하기 위해 상해로 떠나기 전 연해주에서 홍범도를 만났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홍범도는 봉오동을 찾아 통합을 역설하였다. 그 결과 군무도독부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국민회군, 의군단이 통합하여 북로독군부가 결성되었다. 신민단과 의민단도 여기에 합류했다. 연합부대인 북로독군부는 일본군대를 봉오동 골짜기에서 대파했는데 이는 독립군 부대들의 통합과 연대를 통해 가능했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연합부대는 장장 6일간에 걸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바로 청산리전투다.

100년 전 이들 전투에서 큰 승리는 물론 홍범도와 김좌진 같은 훌륭한 명장들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우리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그 승리가 북간도의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 통합, 연대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사실이다. 큰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작은 차이를 뒤로 한 채 통합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두 전투에서 다시 한 번 교훈으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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