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오동·청산리전투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오동·청산리전투
  • 홍성덕 전주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4.0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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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특집)

올해는 1920년 6월과 10월에 중국 북간도 일대에서 우리 독립군 부대들이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반적으로 봉오동전투는 홍범도 장군, 청산리전투는 김좌진 장군이 지도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학계에서 조금은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하지만 제가 얘기하고자하는 점은 전투의 상세한 역사적 사실보다 왜 다른 해가 아닌 1920년에 이 전투가 일어났는지이다.

1910년 나라가 멸망한 후 많은 의병들이 후일을 도모하고자 망명의 길을 떠났다. 우리 지역 김제 출신인 박봉래의 경우처럼 북간도와 연해주를 오가며 활약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두 전투의 승리는 아무래도 1919년 3.1운동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3월 12일에는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서, 3월 13일에는 북간도 용정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지만, 다시 간도 곳곳에서 독립군 부대들이 조직되었고 3.1운동으로 자각한 청년들은 독립군에 투신했다.

봉오동에서 군무도독부가, 연길에서 국민회군이, 서대파에서 대한군정부가 조직됐다. 이러한 독립군 부대들은 3.1운동 이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곧바로 연결되었다. 이 독립군 부대들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청사에 빛날 승리를 거뒀다. 이렇듯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는 단순히 1920년 6월과 10월에 펼쳐진 개별 전투가 아니라, 3.1운동으로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거쳐 진행되어오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연속된 투쟁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독립전쟁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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