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 장마리
  • 승인 2020.04.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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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5>

 띵가띵가 궁짝궁짝, 띵가띵가 궁짝궁짝…… 자가 격리 첫날, 제이는 어디선가 반복적인 멜로디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떴다.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보았다. 새벽 5시를 지나고 있었다. 공무원연수원은 긴 복도를 따라 열 개의 방이 있었고 내부구조도 모두 똑같았다. 자신의 몸만큼 커다란 첼로를 메고 화물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입국 수속을 받고 자가 격리를 위한 절차를 받았으며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밤 열 시가 넘어 이곳에 왔다.

 시향(市響)의 단원이라는 스펙 덕분에 예중을 목표로 하는 초등생 셋을 개인레슨하고 있었다. 교습소라도 운영해볼까 했지만 임대료도 못내 쩔쩔매는 동료는 차라리 트로트를 가르치는 노래교실을 여는 게 수익성이 있을 거라고 했다. 제이는 원래 성악을 했다. 목에 결절이 생겨 기악으로 바꿨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기에 시향의 단원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남자친구의 휴대폰 컬러링이 얼굴 빵빵한 송가인의 가인이어라아아,인 것에 화를 냈다. 동료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 보다 배부른 돼지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선택한 남자친구가 현명하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바이올리스트였는데 일 년 전에 시향을 그만두고 아버지가 하던 삼겹살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제이가 유럽도 아니었고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아니었지만 정 교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중국 우한에 다녀왔다. 정 교수가 우한 교민 페스티벌에 객원 지휘자로 무대에 서는데 첼로 연주자가 없다고 했다. 비행기표와 숙소 제공을 해줄 테니 한 이틀 머물면서 항주와 운남을 돌아보며 놀다가라고 했다. 제이는 거절하지 못했다. 오 년간이나 미뤘던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친구는 논문을 쓰겠다는 제이의 계획에, 그 나이에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는 들 어디다 쓸 것이며, 기악학과가 폐과가 된다는 소문이 있고 정 교수도 곧 짤릴 판국인데 아직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이면 마흔이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이나 하자고 했다. 쌍둥이로 아들과 딸을 동시에 낳고 식당운영을 잘 해서, 클래식은 공연으로 보러 다니자고 했다. 제이는 갈수록 배 나온 아저씨 같은, 아니 뽕짝 같은 얘기만 한다며 헤어지자고 했다.

 띵가띵가 궁짝궁짝, 띵가띵가 궁짝궁짝…… 십 분이 지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4박자의 반복적인 멜로디가 신경을 긁었다. 옆방? 복도? 윗방? 아랫방? 근원지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화장실인 듯했다. 순간 소리가 그쳤다.

  체온을 재서 기록지에 적는데 다시 예의 그 멜로디가 들렸다.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담당자에게 내선전화로 문제의 음악에 대해 강력히 항의를 했다. 담당자는 조속히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걸어 온 전화에서는 윗방, 아랫방, 양 옆방, 모두 모른다고 했다. 제이는 화장실인 것 같다고 했다. 담당자가 피식 웃고는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다. 제이는 트로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음악이 나올 때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띵가띵가 궁짝궁짝, 띵가띵가 궁짝궁짝……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였다. 무슨 뽕짝 제목이 이렇게 철학적이지? 삶의 필연성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태도를 갖자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한 말이었다. 니체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할 때 인간은 위대해진다며 고통과 상실을 포함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갖자고 했다. 즉 운명을 체념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아모르는 ‘사랑’을 뜻했고 파티는 ‘운명’을 뜻했다.

 제이는 유튜브를 열고 김연자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이 노래를, 다양한 사연을 갖고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어느 결혼식장에서 신부의 친구가 한복을 입고 이 노래를 불러 웃음바다로 만드는 영상을 보며 눈물이 고이도록 웃었다. 공유하기를 눌렀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더 이상은 탓하지 않으려고, 사랑해! 라고 쓰고 남자친구에게 전송했다.

 

글 = 장마리(소설가) 

 

 ◆장마리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로 등단, 불꽃문학상 수상, 창작집 『선셋 블루스』, 장편소설『블라인드』, 테마소설집『두 번 결혼할 법』(공저), 『마지막 식사』(공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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