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북문학기행] 1. 황규관 - 삼례 배차장’
[2020 전북문학기행] 1. 황규관 - 삼례 배차장’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4.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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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사이로 무럭무럭 자라나던 소년의 시간들, 어느 버스를 타고 나갔다 다시 왔을까 ‘

 문화의 고장 전북에서 많은 문인들의 작품이 싹을 트고 숲을 이뤘다. 2020 전북문학기행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전북과 연고가 있는 작가와 작품들을 탐구하고, 그 작품의 무대가 된 곳을 소개한다. 우리 고장의 문인들이 포착한 시선에서 많은 이들이 문학적 향취를 찾기를 기대한다

 - 도시와 시골 사이서 살던 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의 입구 ‘삼례 배차장’

 - 시설은 현대화됐지만 오가는 버스 속에서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감성의 흔적 

 ‘아침저녁 등하굣길 / 내 눈길은 항상 버스가 들고 나는 배차장을 / 두근두근 바라보곤 했다’

 시집과 시 제목이기도 한 ‘삼례 배차장’은 현재 ‘삼례공용터미널’의 옛 이름이다.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은 여전히 이 곳을 ‘배차장’또는‘차부’라고 부른다. 배차장에서 작품 속의 말하는 이는 눈까풀을 닫기를 머뭇거린다. 이 눈까풀의 지난함은 자연과 도시 사이서 낀 소년의 마음과 닮았다. 시인은 사춘기로 익어가는 소년이 가진, 두려움과 신비함이 섞인 말똥한 두 눈으로 삼례를 바라본다.

 삼례읍은 고려 때부터 역이 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교통의 요지다. 1970년대 초 어린 학생 보던 삼례의 버스들은 ‘내가 가 보지 못한 봉동, 금마 같은 곳에서 / 버스가 지친 몸을 부리며 오기도 하고’로 묘사된다. 시에서 얘기한 것처럼 여전히 봉동, 금마, 익산으로 향하는 버스들이 남아 있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 고속버스 사이서 사람들은 버스를 향해 시선을 오랫동안 꽂는다. 이제는 현대화된 시설에 걸맞게 시간표 및 버스 알림도 더 편리했지만 버스정류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여전히 목을 길게 빼고 버스를 바라보고 있다.

 시의 첫 줄의 두려움인 ‘퇴학당한 형들의 불량스런 표정이 / 공중변소 회벽에 칼자국으로 새겨졌다고 하고’ 부분에서 배차장은 두려움은 나타난다. 공중변소의 어두운 그림자는 다급함과 뜬소문 속에서 더욱 어두워져 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의 근원은 낙후된 환경이 아니라, ‘세상의 입구’에 가까이 있는 소년의 마음에 가깝다. 떠나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오랫동안 되뇌이던 소년은 이제 중견의 시인이 됐다.

 황규관 시인은 9살때까지 현재 국립무형유산원의 맞은편에 살았고, 삼례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때까지 살았다고 말했다. 시인은 “삼례라는 곳은 제게 먼저 강과 들판으로 이미지가 남아 있다. 제 시에 나오는 ‘강’ 이미지는 이 때 형성됐다. 살았던 곳이 비비정 마을이라서 만경강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세상의 전부였던 삼례 배차장 / 나는 그곳에서 여기까지 왔으나 /한 발짝도 멀어지지 못했다’ 라는 마지막 부분에서 여전히 시인의 감성이 삼례 배차장에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제외하고 타지에서 살았다는 황 시인은 “비비정 마을에서 보면 전라선 열차가 지나다니고 배차장에서는 버스가 모르는 곳으로 출발하니 사춘기 소년에게 묘한 곳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육필 시집인 ‘삼례 배차장’에는 시 44편이 실려 있다. 이 시집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과 사물들은 쓸쓸함과 낯섬 속에서 조용히 뒤척이며 되뇌이고 있다. 이 되뇌임은 여러 갈래로 나타나지만 어쩌면 이들 모두 그들만의 정류장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갈 길을 잃어버린 순간에는, 삼례읍 배차장에서 민물고기처럼 오가는 버스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수많은 희망의 말들보다 위로가 될 수 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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