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희망’
‘전염병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희망’
  • 김성철
  • 승인 2020.04.02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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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지난 2월 1일부터 최근까지 4천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약 20배 높은 판매고라는데, 1947년에 출간된 소설이 2020년 현재 이처럼 높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의 주제인 페스트는 중세 유럽 전역에서 인구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위협적인 전염병이었다. 이로 인한 인구의 급속한 감소는 소작농을 구하지 못한 영주들의 파산으로 이어졌고 경제 구조를 변화시켰다. 그 결과 시장과 화폐, 경제, 교역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봉건제 몰락과 시민계급의 성장과 함께 근대가 시작되었다.

 페스트 외에도 전염병은 인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 다른 전염병 ‘천연두’는 금융질서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유럽의 침략자들이 신대륙에 전파한 천연두로 인해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종말을 가져왔고 이후 남미의 금과 은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상공업자들의 지위 강화와 자본주의가 싹트게 된 것. 현대사에 최악의 팬데믹으로 기록된 스페인 독감도 있다. 발병 2년 만에 세계인구 약 5억 명이 감염됐고 제1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많은 인구가 사망한 이 전염병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알려졌다시피 바이러스는 소멸하지 않고 변형되며 인간을 숙주로 살아간다. 더군다나 문명의 발달과 세계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염병을 더 빠르게 확산시킨다. 과거 기차나 배로 옮겨 다니던 바이러스는 이제 비행기를 타고 더 빨리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코로나19 역시 우리 일상의 풍경들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과거 전염병들이 그랬듯, 정치와 경제구조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 사회는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패닉 상태다. 현대 사회 대부분 국가는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특정국가의 위기는 이제 모든 국가의 위기로 번져나간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역 경제의 위기 또한 불 보듯 뻔하다.

 한국은행 전북본부가 30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전북경제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여파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지역경제가 더 어려워졌다.

 전북지역 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큰 폭의 감소세가 지속하고 있으며, 서비스업도 소비심리 위축과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확산 등으로 외식과 여가 등을 중심으로 감소했다. 관광업 또한 한옥마을 등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방문객이 대폭 감소해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와 관련된 숙박 및 음식업, 운송업도 침체한 흐름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 민간기업, 그리고 개개인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전염병에 대항하는 대한민국을 배우고 싶다는 나라들도 줄을 섰다.

 소설 속 페스트에 맞서는 사람들 또한 그들의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해낸다. 봉쇄된 도시에서 가족과 떨어져 환자 돌보기에 힘쓰는 의사 ‘리유’, 취재를 위해 도시를 방문했다가 탈출을 포기하고 보건대에서 활동하는 기자 ‘랑베르’, 혈청 제조에 몰두하는 의사 ‘카르텔’, 자질구레한 업무를 묵묵히 해 내는 시청 말단 직원 ‘그랑’까지, 카뮈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라는 꽃을 영웅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을 통해 담담히 그려낸다.

 특히 운명에 잠식당하기를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질병과 죽음에 맞서 싸우는 인물들을 통해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투쟁하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려는 작가 자신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결국 페스트는 종식되고 소설의 마지막, 의사 리유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재앙 한가운데서 배우는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보다 감동할 점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소설 페스트가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일 듯싶다. 코로나19라는 재앙에 맞선 인간들의 분투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그리고 결국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에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김성철<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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