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4>홍하의 골짜기에서 보낸 한 철
[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4>홍하의 골짜기에서 보낸 한 철
  • 정철성
  • 승인 2020.03.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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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나는 교련복 입고, 요대 두르고, 각반 차고 훈련을 받았다. 각목으로 만든 모형총을 메고 열병과 분열을 했다. 한국전쟁 중 임무를 수행했을 지도 모르는 엠원 소총으로 분해와 조립을 연습했다.

노리쇠를 치켜들고 노리쇠라고 크게 외치고 다시 역순으로 조립하여 격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점수를 받았다. 교련은 정규 교과목 가운데 하나였다.

돌이켜보니, 국가가 소년병 양성을 주도했다. 학교 밖에서 만난 친구의 형은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는 시를 알려 주었다. 어느 날 그는 “자유, 이렇게 귓속말로 속삭여도/ 온 도시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라고 펜글씨로 쓴 쪽지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 나라는 학생들에게 공적인 자리에서 유행가를 부르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였다. 명목상 학생은 학생다워야 했다. 교과서 밖에서 배운 노래 가운데 ‘홍하의 골짜기’가 있었다. “정든 이 계곡을 떠나가는/ 그대의 정다운 그 얼굴/ 다시 한 번만 얘기하고픈/ 목장의 푸른 잔디밭 위/ 언덕을 넘어서 가던 그날/ 수선화가 피어 있었네/ 잊지 말고서 다시 오려마/ 아아, 목동이 사는 계곡.” 동문사거리 헌책방의 팝송대백과는 이 노래가 미국 민요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붉은 바위기둥 사이를 흘러가는 남부의 강물과 야생 수선화가 지천으로 깔린 강변을 꿈엔 듯 그려보았다. 불현듯 구름 먼지를 일으키며 소떼를 몰고 가는 카우보이의 질주가 부러웠다. 목동에게는 깨뜨릴 수 없는 약속이 있고, 떠나가는 여인에게는 말 못 할 사연이 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불변의 공식이다. 목동에게서 먼지와 땀과 소똥 냄새가 날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소중한 꿈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별마저도 아름다운 미합중국은 풍요로운 나라였고, 경험상 미제는 모두 튼튼하고 귀한 물건이었다.

 

 홍하의 골짜기가 미국의 남부가 아니라 북부에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사실은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 매니토바 쪽이 노래의 배경이라고 한다. 남과 여의 애틋한 곡절이 숨어 있는 이 노래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북미의 여러 곳에서 민요로 불리던 노래를 가수들이 녹음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의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배운 노랫말은 영어 가사를 느슨하게 한국어로 옮긴 것이었다. 번역이 아니라 번안에 가깝다. 그 시절 내가 건전가요만 따라 부른 것은 아니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때 청바지와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가수들이 등장했다. 우리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당시에 나온 노래 가운데 제멋대로 번안한 곡들이 많았다. 어떤 가수는 원곡을 숨기고 자기 노래인 것처럼 행세를 하기도 했다. 원곡을 듣고 나서 이것이 그것인가라고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번안의 대상은 미국의 노래에 한정되지 않았다. 서구의 노래라면 그럴듯한 것이 모두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밀수품으로 들어왔다. 내 젊음의 감동이 적지 않게 번안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부끄러움과 슬픔을 동시에 맛보았다.

 

 나의 자격지심은 번안이 문화 전파의 한 양태라고 속삭인다. 『데카메론』의 본보기가 없다면 『캔터베리 이야기』를 어떻게 꾸밀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초서는 보카치오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다. 그리고 번안의 시절에도 쉬운 길을 버리고 창작곡을 만들었던 어지간히 깐깐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 뜻과 내 숨이 하나가 될 때 나는 온전한 감정을 얻는다. 모국어와 육체를 하나로 만드는 노래가 나의 노래이다. 영혼이 온몸의 가죽을 두드리는 노래가 나의 노래이다. 빌려온 노래에 감정을 실어 보아야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결국 흘러내릴 뿐이다. 번안의 계곡에서 보낸 한 철의 추억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친구의 형이 보여준 보리밭과 성벽은 이국적이었다. 우리 동네 보리밭에는 까마귀가 날지 않았다. 전주성의 성벽은 이미 헐리고 흔적이 희미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를 호흡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아마 케이팝을 들으며 턱으로 박자를 세고 있을 것이다.

 

 글 = 정철성(전주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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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성

 문학평론가, 전북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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