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기획> ‘군산 하늘 딸기’ 고일권 대표
<귀농귀촌기획> ‘군산 하늘 딸기’ 고일권 대표
  • 정준모 기자
  • 승인 2020.03.29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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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사는 인생 각박한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기 싫었습니다.”

 특히, 눈에도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과 아내가 자연과 어우러져 수확의 기쁨을 맛보며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왔습니다.”

 불혹의 나이지만 제 인생에 가장 현명한 결정으로 생각합니다.”

 40대 초반 귀농을 단행한 고일권(46)씨 얼굴에는 행복이 철철 넘쳐 흘렀다.

 전도양양한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딸기 아빠’로 살아가는 ‘군산 하늘 딸기’ 고일권 대표의 귀농사(歸農事)를 들어봤다.

 

 ●운명

 그의 귀농 동기는 우연 반 필연 반이었다.

 서울에서 유수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았던 삶은 남부럽지 않은 전도양양한 직장인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운명의 시간이 닥친다.

 2012년, 10년 넘게 투병 생활을 했던 선친께서 그만 세상을 뜨게 된다.

 병마와 싸워야 했던 아버지의 고통을 눈으로 보고 수발을 했던 터라 상심이 컸다.

 설상가상,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딸도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갑자기 벌어진 예기치 못한 상황들은 그를 ‘건강 염려증’ 환자로 내몰았다.

 그의 건강한 몸과 마음은 서서히 무너져만 갔다.

 직장생활도 서울 생활도 염증이 생겼다.

 그러다 우연히 로저스 홀딩스 대표인 짐 로저스의 서울대 MBA 과정 강연을 접한다.

 이게 인생을 바꿔놓았다.

 “농업이 미래투자를 위한 유망 업종이 될 것”이란 짐 로저스의 강의는 식었던 심장을 뛰게 했다.

 평소 ‘심사민행(深思敏行, 깊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라)’이란 좌우명을 품고 살았던 그는 주저없이 귀농을 결심했다.

 여기에는 자신을 믿고 따라준 아내 김숙경씨의 든든한 성원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5년 1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듬해 1월 곧바로 고향 군산으로 이사를 왔다.

 그해 9월 평소 구상했던 옥산면 일원에 ‘군산 하늘 딸기’란 농장 간판을 걸고 본격적인 딸기 농사에 들어간다.

 제대로 된 하우스 시설을 갖춘 수경재배 딸기는 그가 군산의 최초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전광석화처럼 일사천리 진행됐다.

 그러기까지는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었다.

 

 ●인연

 귀농은 결정했지만, 처음부터 딸기 농사는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설계했던 귀농은 과수원이었다.

 부지 물색을 위해 도내 무주와 진안 등을 돌아다녔으나 성에 차는 곳이 없었다.

 더구나 과수원은 이른 시간 소득을 올릴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딸기였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 1천200평이 밑천이 됐다.

 딸기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곧바로 김제 농식품인력개발원에서 딸기 재배에 필요한 이론 공부에 들어갔다.

 아울러 국내 최대 딸기 생산지인 논산의 재배농을 무작정 찾아가 6개월간 일손을 보태며 재배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론과 실습을 병행해 배웠어도 딸기 농사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딸기는 한해 4~5번 수확을 해야 수지타산이 맞아떨어진다.

 출발은 산뜻했다.

 기대 이상의 소득을 올려 자신감이 넘쳤다.

 세상 모두를 가진 기분이었다.

 이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번째 수확 시기에는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 상품으로 가치를 잃었다.

 첫 실패만큼 낙담이 컸다.

 반면 그 패배는 오늘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작물 특성에 따른 재배기술과 경험 부족을 절감했던 그는 초심을 다진다.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농장을 떠나지 않은 성실함과 부단한 노력은 마침내 그를 성공한 귀농인으로 인도했다.

 

 ●열정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내던지고 흙 묻은 작업복을 택한 고일권 대표의 진짜 속내는 단순한 귀농이 아니었다.

 “6차 농업 시대를 열겠다.”

 그는 폐부 깊숙이 간직했던 원대한 포부들을 끄집어 냈다.

 6차 농업은 1차 산업인 농업을 2차 가공산업과 3차 서비스업을 융합한 농업 관련 종합산업인 만큼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는 단순히 딸기 농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여러 경험 속에서 재배만 특화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주어진 여건과 기술 등을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딸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곧바로 가공식품에 꽂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마침 군산시농업기술센터 내 농산물가공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딸기잼을 만들어 직거래 장터와 SNS 등 온라인을 통한 차별화된 홍보와 판매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의 도전정신은 브레이크가 없다.

 품질과 당도를 자신한 그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틈새를 겨냥했다.

 특히, 홍콩과 동남아 국가들이 국내 가공용 딸기를 선호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파고든 게 주효했다.

 수천여만원 상당의 동결건조 딸기를 만들어 홍콩 등에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그에게 늘 아쉬움이 있다.

 자신과 비슷한 규모의 농장들이 군산에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딸기 단지화나 협동조합이 결성되면 해외 시장 개척이 쉬워져 지금보다 훨씬 많은 양을 수출할 수 있다는 게 고 대표의 판단이다.

 고 대표는 “국내에서 재배돼 가공되는 식품들을 외국인이 매우 선호한다”며 “상상외로 넓은 해외 수출 시장이 매력이자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천직

‘군산 하늘 딸기’로 명명된 그의 딸기 농장은 체험 명소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해만 유치원 원생과 초등학교 학생, 부모 6천여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직접 딸기 수확과 딸기잼 ·동결건조딸기 만들기 체험 등 이색적인 농촌 체험 제공으로 농촌과 농업의 소중함을 심어주고 있다.

그는 “조만간 다른 곳에 체험 공간을 마련해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신비한 자연의 세계와 섭리를 일깨워주고 싶다”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고일권 대표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하늘 딸기’로 이름 지은 만큼 하늘이 선택한 영원한 진짜 농사꾼으로 소박한 꿈을 이루고 건강한 지역 발전을 위해 밑거름이 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군산=정준모·조경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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