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의 바이러스
n번방의 바이러스
  • 이윤애
  • 승인 2020.03.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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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일상이 정지된 요즈음 온 국민은 분노로 들끓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와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에 불과 며칠 만에 수백만 명이 청원하고 있다. 제도가 생겨난 이래 최대 규모라고 한다.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n번방은 취약한 아동청소년들과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포시켜 온 대화방이다. 이곳에는 유료회원 26만 명이나 가입해 그 영상들을 돌려봤다고 한다.

 분노한 민심에 정부도 나서고 정치권도 나섰다. 급기야 청원게시 6일 만에 경찰은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아동청소년 성착취 불법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로 그놈의 성명, 나이, 얼굴을 공개했다. 조·주·빈. 다음날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 고개를 들고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뉴스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무감정인 그 모습이 더 섬뜩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박사 하나 잡았다고 악의 뿌리가 뽑힌 건 아니다. 그 대화방에 접속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이 키득거리며 더 자극적인 것들을 요구하고 동조했을 26만 명의 신상도 마찬가지다. 청원게시자들은 나라가 성범죄자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할 거라면 알아서 피할 수라도 있게 박사방을 비롯한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도 공개해서 표찰을 붙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재인대통령은 작금의 사태를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성착취 대화방 회원 전원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하고 특히 ‘공직자를 반드시 가려내라’고 요청했다. 여성가족부를 위시한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국회의원들은 디지털 성범죄 처벌강화를 위한 긴급간담회를 열어 ‘n번방 재발방지 3법’을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회기 내에 반드시 처리하자고 했다. 경찰은 이미 대화방 유료회원들의 명단을 확보했고 국제공조를 해서라도 가입자 전원을 수사하겠다고 한다. 국민의 공분에 떠밀려 부랴부랴 움직인다.

 그런데 n번방 사건이 알려진 건 요 며칠 사이 들불처럼 일어난 국민 분노보다 앞선다. 지난해 모험심 강한 두 명의 대학생 ‘추적단 불꽃’이 n번방의 실체를 세상에 알렸고 이후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졌다. 지난 1월에도 국회에 국민청원으로 접수되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의 무개념과 게으름은 성폭력범죄특례법 일부개정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텔레그램 내 성착취 문제에 대한 국회논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속으로 끝내버리거나 방기했던 셈이다. 해당 법사위원들은 이런저런 변명을 내놓는다.

 4년 전 소라넷 폐쇄운동을 시작으로 여성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강력처벌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사이트운영자 한두 명 처벌하는 것으로 흐지부지되거나 그것도 솜방망이 처벌로 악질의 변종범죄를 더 키웠다고 본다. 조주빈이 구속되고 경찰수사가 확대되자 이 순간에도 n번방이나 박사방에서 활동하던 범죄자들은 플랫폼만 바꿔 또 다른 대화방들로 대피한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악성 디지털 성범죄를 종식시키고 인권감수성을 높여낼 수 있을지 국민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n번방은 범죄조직이고 반사회적 바이러스의 온상이다. 우리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집단감염이 의심되는 곳에 대해 전수조사 했고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고 격리했다. 마찬가지로 성범죄바이러스들도 전수조사해서 근무지도 사는 곳도 공개하고 격리해서 철퇴를 가해야 되지 않을까?

 안전한 세상에서 숨을 쉬고 싶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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