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 깊은 충의와 애국 혼이 빛나는 부안- 백제인의 기상과 살신성인 애국 혼이 빛나는 고장
뼛속 깊은 충의와 애국 혼이 빛나는 부안- 백제인의 기상과 살신성인 애국 혼이 빛나는 고장
  • 김황곤
  • 승인 2020.03.26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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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특집) 14.

 이 고장 부안은 천혜의 산수와 오곡백과 풍성한 옥야천리가 한데 어울려 어염 시초가 풍부하다. 선사시대로부터, 1416년 ‘부안‘정명 600여 년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충의와 애국 혼이 서린 찬란한 역사 문화의 꽃을 피운 선현들의 이상향이다. 만대의 미래를 빚는 뜨거운 숨결로 면면이 물결치는 살기 좋은 고장이다.

 한말에는 소위 양반들의 지배폭력과 탐관오리들의 세금 갈취 및 비행과 폭정이 극에 달했다. 이에 녹두장군 전봉준은 광범위하게 농민군을 규합 1894년 1월 ‘반부패 폐정개혁 창의’의 기치 아래 분연히 일어서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 이는 역사적 반봉건 근대민주화운동, 반외세 국권수호운동으로 승화시켰는데, 이때 부안은 동학농민군이 전주에 입성하는 시발점이 된 ‘백산대회’를 여는 등 농민혁명의 전략적 요충지로 우뚝 섰다. 김낙철, 김영조 등 수많은 부안의 농민들이 농민혁명에 가담하였고, 이로 인해 일제는 1894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부안을 비롯하여 전라도 농민군 수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가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들 농민군의 후예들은 오히려 후일 항일 의병운동의 대대적인 불씨가 되었으니, 이는 우리의 위대한 애국 혼의 저력이 아니랴! 이를 일컬어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부안)”이라 이르는 것은 아니랴!

 일제는 1875년 불법 강화도 침범 이래 호시탐탐 한국을 식민지화 하고자 혈안이 되어 왔다. 1905년 마침내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국권을 강탈하여 온갖 야만적 행위를 강행하니, 이에 온 국민은 격분하였다. 부안의 김보배 등 호남의 많은 의병들은 격렬히 항쟁에 돌입하였는데 이에 일제는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까지 소위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라는 호남의병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다. 1910년 8월 29일에는 결국 이완용 등 을사오적과 야합, 불법무력으로 “한일강제병탄”을 강행함으로써 반만년 선비의 땅 우리 대한은 일제에게 강탈당하여 식민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부안의 최두영 선생은 매국노 이완용에게 ‘치죄문’을, 일의 천황에게는 ‘항일문서’를 발송하는 등, 부안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선비들은 항일의병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일제는 2개 보병사단과 약 4만 여명의 헌병 및 경찰 등을 전국 요소에 배치로 무단통치를 자행 하며, 1912년부터는 전국에 「토지조사사업」을 강행하여, 우리농민의 토지를 강제로 빼앗아 갔다.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어 지주의 50%이상이 일본인으로 바뀌었고, 한국인은 대부분 소작인이 되었다. 생산된 농산물은 무참히 약탈해가니 우리의 농민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해야만 했다. 견딜 수 없는 국민들은 대대로 정든 땅 고향마저 등진 채 천리타향 연해주, 만주 등지로 떠나 피눈물로 유리방황해야만 하였다. 그 때 김제와 더불어 조선의 최대 쌀 생산지의 하나인 부안에서는 일제의 오모리농장과 구마모토농장 등의 대농장이 진을 치고 더욱 악랄한 수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제의 극악무도한 만행은 날이 갈수록 더하여져 우리의 민족지도자들과 온 국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1919년 요원의 불길처럼 분연이 일어난 3·1독립만세 운동, 이에 광분한 일제는 총칼로 우리 국민을 처참하게 짓밟았고, 우리의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악랄한 고문과 살인을 일삼았다. 대한의 자주독립을 차단하는 한 편, 더욱 검은 야욕에 눈이 먼 일제는, 1931년 중국과는 만주사변을, 1941년에는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그에 따른 전쟁 물자를 총동원코자 각가지 국민총동원을 대대적으로 전개 하였다.

  이 기간 동안 부안의 농민은 지주가 1%, 소작농이 83%였다. 높은 소작료를 부과하고도 부안에서 생산되는 미곡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탈해갔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부안지역에서 태평양전쟁에 강제징용 된 사람 중 신고 된 자만 1,335명이다. 끌려가 죽음보다 더한 지옥생활로 연명해야 했으니, 이 어찌 노예보다 더 낳은 삶이라 할 수 있으랴! 나라 잃고 암흑 속에 던져진 생의 설움을 그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김황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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