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철수 선생의 빛나는 행적을 기리며
독립운동가 김철수 선생의 빛나는 행적을 기리며
  • 기세원
  • 승인 2020.03.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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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특집)

 김철수 선생은 군산 금호학교를 거쳐 1912년 일본도쿄 와세다 대학 전문부 정치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1945년 5명의 유학생과 함께 독립운동 비밀결사를 결성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1916년에는 조선인 중국인 20여명과 더불어 반일단체 신아동맹단을 결성하여 조국의 명운을 북돋워 나갔다.

 귀국 후 1920년 서울에서 사회혁명당 조직에 참가 했고 동년 7, 8월 경은 중국 상하이로 진출하여 고려공산당 베르흐네우진스크 연합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이 무렵 선생은 이동휘, 안창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 개조파 일원으로 1923년 국민대표에 참가하여 임시정부에서 부하한 임무에 정진하다가 국민대표회에서 생계위원 및 비서로 활동하고 동면 5월에 국내로 돌아왔다.

 1924년 전북민중운동자동맹에서 활동하는 한편 1925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중앙위원회 조직부장을 맡고 책임비서가 되었다. 후에 코민테른 파견 대표자로 선임 코민테른으로부터 조공제 2차 대회 승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공산당 조직이 와해되어 만주에 망명하여 중국지린성에서 조선공산당재건건설준비위원회 위원장이 되기도 하였다.

 귀국 후 잠행하다 1930년 일경에 피체되고 징역 10년으로 옥고를 치렀다. 1938년 출옥 후에도 애국의 전선에서 활약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징역 4년 복역 중 공주형무소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그의 공훈을 기리는 바는 그의 공산주의 활동이 아니라 조선공산당 조직을 수단으로 다만 국권 회복에 정진한 사실이다. 조국의 주권이 반석 위에 우뚝하기를 목표로 일신의 안일을 돌보지 않았으며 그의 지혜와 슬기를 오로지하여 애국의 일념으로 매진한 공훈에 얹어 건국훈장독립장에 추서되었다.

 그 시절 공산주의는 오늘의 공산주의 이념과는 다른 오직 국민을 위한 국민의 사회건설을 염두에 두었다고 본다. 일제의 식민지화 정책에 합리적 이론으로 반격하는 역할에 큰 공을 세웠다.

 

 김철수 선생은 독립운동을 위해

 그의 사상이나 신념까지 수단으로 삼았다

 공산당 이념은 애국정신 안에 한 분류였고

 애국애족의 화신으로 선생은

 자신의 안일을 돌보지 않았으며

 북돋우고 키운 것은 오직 독립운동 정신이었으니

 그의 애국의 혼 만대에 빛나리라

 

 기세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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