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클럽에서 부른 금지곡 - 늙은 군인의 노래
장교클럽에서 부른 금지곡 - 늙은 군인의 노래
  • 이종민
  • 승인 2020.03.24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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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3>

 아직도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꾼다, 환갑을 넘어 내년이면 정년퇴임인데 뭔가에 쫓겨 긴장을 할 때면 지금도 자주!

 그렇다고 20대 청년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실제 군 비상훈련 상황이 재현되어 군화 끈 등이 말썽을 부렸었다, 꿈에서. 요즘은 소집 시간을 맞추지 못해 애를 태우다 깨곤 한다. 자동차 주차 장소를 찾지 못하거나 열쇠를 잃어버려 제 때에 귀대(?)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뭐 대단한 시련을 겪었다고!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3년을 근무했으니 자랑할(?) 만한 군대 이력은 없다. 일제국주의 군대의 못된 전통을 가장 잘 계승했다는 해군장교후보생 훈련과정이 참혹하고 비인간적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기간이 3달 조금 넘었으니 이 또한 명함을 내놓을 입장은 못 된다.

 나는 고문관이었다. 그것도 꽤 유명한! 그 유명세는 우선 제식훈련 때 발을 못 맞추는데서 시작된다. 소심함에 완벽주의가 합쳐지면 때로 괴물이 탄생한다. 이번에는 잘 맞춰야지. 절대로 틀리면 안 되지, 하는 조바심으로 쿵 북소리를 기다려 왼 발을 내딛는다. 그러다 보면 으레 반 박자가 늦어버린다. 그 이후는 모두 상상할 수 있는 일! “끝에서 두 번째 줄 왼쪽 끝 앞으로 튀어 나와!” 나만 망신당하면 그래도 나은데 나 때문에 단체기합을 받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원망과 조롱의 눈초리가 갈수록 매서워졌다.

 거기에 구보 열외의 해프닝까지! 구보는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훈련. 가슴이 터지는 듯하고 다리가 땅겨 거의 항상 낙오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너무 힘이 들어 한번은 열외를 자청했다. 그 대가의 수모는 참혹했다. 시내구보 내내 연병장 한 켠에 있는 물웅덩이를 낮은 포복으로 기었다. 훈련복은 물론 내의까지 온통 흙탕물 범벅, 그때 그 기합을 담당했던 구대장과는 임관 때에도 화해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지금 만난다 해도 욕지기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고문관 유명세 덕에 좋은 일도 있었다. 이 고문관이 훈련 중대장으로 임명되자 우리 중대는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가 되었다. 단체기합을 받게 될까봐 소대장 분대장은 물론 전 중대원이 긴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덕에 중대원들도 준비를 하여 내가 중대장으로 있는 동안 우리 중대는 단체기합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조직의 흥망성쇠는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런데 지도자의 역량 부족이 오히려 조직원들을 긴장시켜 조직이 더 활성화된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아이러니는 도처에 있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드디어 임관, 그후 보습교육을 받던 어느 날, 해군장교 클럽에 단체로 가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이면 해피 아워(Happy Hour)라 하여 술값이 매우 싸다. 단체로 동기들 몇십명이 가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호기롭게 부른 노래가 하필 [늙은 군인의 노래]였다.

 나는 군가라고 우겼지만 이미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금지곡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동기들이 상당 수 있었다. 말리지도 못하고 수군거리는데 난 노래 잘 한다고 칭찬하는 것으로 치부했다. 노래가 끝나자 동기들이 다가와 ‘야 왜 그런 노래 불러 분위기 깨냐?’ 원망어린 핀잔을 해댔다. 그러나 해사출신 영관장교는 뭣도 모르고 ‘노래 참 좋다!’ 칭찬까지 했다. 5.18 직후 전두환 군부독재체제가 막 시작될 때 얘기다.

 대학시절부터 양희은을 좋아했다. 송창식을 먼저 좋아했는데 여자 친구가 그를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방향을 양희은으로 틀었다. [아침이슬]과 [상록수] 그리고 [불나무] 등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나는 좋아하는 가수의 군가 풍 노래를 하나 불렀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 서슬 퍼런 시절에! 금지곡을 장교클럽에서! 어리버리 고문관의 마지막 오기? 아니면 뒤끝? 그 덕에 내 유명세는 더해졌다. 그러나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생활하다보니 그것이 엉뚱하게 영웅담 비슷한 것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사실 군사독재시절이라 해도 이 노래가 금지곡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 김민기라는 ‘불온한’(?) 이력의 가수가 만들었다는 것만 빼고는. 오히려 애국의 정서가 강한 편이다. 이 노래는 2018년 제 63회 현충일 국가기념행사에서 최백호가 강하늘, 임시완, 지창욱, 주원 등 당시 군복무 연예인들과 함께 불러 국가 추모곡으로 당당히 복귀한다. 고문관에게도 시대를 꿰뚫어 보는 혜안 하나쯤은 있었던 것이다!

 글 = 이종민(전북대학교 교수·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종민

  저서로 음악편지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 『화양연가』, 『흑백다방의 추억』, 학술저서 『변증법적 상상력-윌리암 블레이크의 작품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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