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 장기요
  • 승인 2020.03.2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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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자연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며,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일정 속도, 방향으로 기계적으로 흐르는 연속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대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크로니클’(chronicle)이 여기서 왔다. 반면, 카이로스는 인간의 목적의식이 개입된 주관적·정성적 시간이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시각(時刻)이라고 달리 표현하기도 한다. 적절한 때, 결정적 순간, 기회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카이로스 석상에는 ‘내가 벌거벗은 이유는 쉽게 눈에 띄기 위함이고,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붙잡기 위함이며, 내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한 번 지나면 쉽게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손에 들고 있는 칼과 저울은 나를 만났을 때 신중하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있는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opportunity)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아 누구에게나 다가가며 양손에는 칼과 저울이 들려 있어 기회라고 생각될 때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냉철한 결단을 내리도록 한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순간순간 부딪치는 찰나의 소중함이 얼마나 깊은지를 대변해주는 시간관념인 셈이다.

 물리적 측면에서 보면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완전히 다르다. 대체적으로 크로노스의 삶 속에서 카이로스를 열망하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과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한 시간의 느낌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을 크로노스로만 받아들이면 시간의 노예로 수동적 삶을 살기 쉽다. 따라서 누가 능동적으로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움켜쥐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새해를 맞으며 외친 카운트다운 소리가 귀에 선하지만, 어느덧 2020년도 1/4이 지나가고 있다. 하루하루 부대끼며 살다 보니, 쏟아지는 뉴스에 치이다 보니 속절없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채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연초 새롭게 다짐했던 일들을 기억하며 목표를 되새기는 일이 중요하다.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변명으로, 너무 나이들어 버렸다는 소심함으로 또다시 후회로 가득 찬 채로 새봄을 맞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조직 차원에서도 연초의 목표와 계획을 중간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당초의 계획에 미치지 못하거나 시작하지 못한 목표가 있다면 다시 시작하자. 계획이 무엇이든,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들은 맺고, 끊고, 시작되는 시점이 최적의 시기이다.

 코로나19여파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춘분(春分)이 돌아왔다. 옛 조상들은 새해는 춘분부터 시작이라고도 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인 동시에 겨울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기도 하다.

 시작의 절기 춘분(春分)을 맞이하여,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맞이하여, 헤르만 헤세의 시 <봄의 말>과 함께 남은 3/4을 각자의 카이로스로 만들어 가보자.

 “봄이 속삭인다. 꽃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지금 이 순간 어떠한 후회도 남지 않도록.

 장기요<농협은행 전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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