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폭풍 번개 속에서도 버티는 까치집을 보면서
세상의 폭풍 번개 속에서도 버티는 까치집을 보면서
  • 정영신
  • 승인 2020.03.23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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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기막힌 목수다/치밀한 눈대중으로 집을 짓는다/부리 하나가 무기고 트럭이고 포클레인이다/진흙이 콘크리트고 삭정이가 철근이다/저렇게 엉성 엉성 짓는 것 같아도/세상의 온갖 불화를 견뎌낸다/폭풍과 번개 앞에서도/철옹성으로 버티는 집 속엔/고봉밥 햇살이 먼저 들어 와 눕는다

 강나루 시인의 <까치>라는 시이다. 전주시의 모든 하수를 처리하는 환경사업소 서북쪽 끝 메타세쿼이아 꼭대기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 까악 깍, 까악 깍깍 깍깍…… 암수 한 쌍의 까치 부부가 40여 일 동안 온갖 장애물과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새집을 완공한 것이다. 참 기특하다. 참 멋지다. 반생을 더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까치집을 눈여겨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올해는 까치집이 눈에 들어온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무법 행로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등 최선의 상생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 몇 달 뒤의 기상변화까지 예측해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튼실한 집을 짓는 까치의 지혜가 너무도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따라 키 큰 교목 꼭대기에 다소곳이 앉아 깍깍 깍깍…… 울어대는 까치가 대견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짧지 않은 내 삶의 긴 길목에서 저 까치들이 수백 번도 더 내가 지나가는 같은 하늘 위를 날며 울어댔을 텐데, 단 한 번도 내 의식 속에 자리한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친구들과 검은 고무줄을 허리에 매고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까치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까치노래를 부르면서도 순희네 집 돌담 모퉁이 참죽나무 끝에 매달린 까치집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참 기이한 일이다. 이제 까치가 궁금하다. 가느다란 높은 나뭇가지 끝에 간들간들 매달려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이른 꽃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저 까치집이 장마철 소나기는 피할 수 있을는지, 한여름 큰 태풍에는 무사할는지 많이 걱정이 된다.

 깍깍 깍깍…… 무심히 3월 하늘을 빙 도는 까치소리가 정겹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된 느티나무나 참나무 등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가지 끝에 둥지를 마련하고 수시로 깍깍거리며 논밭의 벌레들을 해결해 주는 까치를 익조(益鳥)로 여겼다. 그래서 당연히 이른 아침이나 정월 초하루의 까치 울음소리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상서로운 소리로 신성하게 여겼다. 그래서 까치집이 있는 나무 아래에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고 생각했고, 까치집이 있는 나무의 씨를 받아 심으면 그 가문원이 큰 벼슬을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여염집에서도 까치가 주로 집을 잘 짓는 키가 큰 참죽나무를 울타리 안에 일부러 심어서 까치가 집을 잘 짓도록 정성껏 손을 빌었다. 또한 1964년에는 ‘나라 새 뽑기 대회’를 개최했는데, 까치가 최다 득표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국조(國鳥)가 되었다. 그러나 농약의 과다 사용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문제가 생기면서, 벌레 등 까치의 주식량이 감소하자 살기 위해 민가의 농작물들을 파헤치다 보니 이제는 농민과 한전의 미움을 사는 해조(害鳥)로 전락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민족의 가슴 한끝에는 깍깍깍깍 새 아침을 열며 울어대는 밤나무나 미루나무 가지에 올라앉은 까치가 가족처럼 친근하다. 게다가 목숨을 내 놓고 수천 번 시린 겨울 하늘을 날며 새끼들의 안전한 양육을 위해 까치집을 완성해 내는 까치의 성실한 일면을 헤아리다 보면, 우리 선조들의 유별난 까치 사랑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스럽고 더 애틋해진다.

 보통 까치들은 소한이 지난 다음 한 40여 일간 집을 짓는다. 까치들은 인간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70여 센티미터에 이르는 둥근 공 모양의 튼튼한 집을 짓는다. 우리 선조들은 과학적인 기상관측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과거에 까치집을 보면서 그해의 큰 태풍을 예측했다. 까치집이 높으면 여름에 덥고 큰 바람이 없으며 풍년이 들 징조이고, 까치집을 낮게 짓거나 북쪽으로 문을 내면 그 해에 태풍이 잦을 징조로 여겼다.

 까치집은 1,300여 개의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은 나뭇가지와 흙과 짚, 작은 부리와 다리로 지붕까지 만들어서 비도 새어들지 않고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완벽한 집을 만든다. 미리 준비한 설계도 한 장 없이 자재를 운반할 트럭도 없이, 땅을 파고들어서 나를 포클레인도 없이, 삽이나 괭이 하나 없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그들의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까치집을 들여다보니 저절로 진한 감탄사가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참으로 까치가 존경스럽다.

 우리 선인들의 속설처럼 까치집을 지은 나무 아래에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되고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전통도시 우리 전주는 곧 한국이다. 또한 우리 시(市)의 모든 하수를 처리하는 환경사업소에 길조인 까치가 집을 짓고 아침마다 깍깍 깍깍…… 상서롭게 울어대니, 당연히 우리 시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아직 속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 전주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진자도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 우리 전주가 길지(吉地)인 것이다.

 깍깍 깍깍…… 까치 소리가 반갑다. 좋은 소식을 몰고 오는 저 까치소리 너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제 그만 다 사라지고, 다시 전 세계가 평온해 지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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