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혐오바이러스 그리고 슬기로운 일상생활
‘코로나 블루’, 혐오바이러스 그리고 슬기로운 일상생활
  • 김형준
  • 승인 2020.03.18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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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던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지만 전 세계에서는 날로 그 기세가 확산하고 있다. 유럽,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탈리아 등 환자가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나라에서는 이동금지와 도시 봉쇄라는 극약 처방까지 하는 실정으로 이번 전염병 사태가 끝 모를 터널처럼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도 코로나19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너무도 바뀐 일상이 이젠 익숙해지는 만큼 그 피로도가 점점 커지는 모양새이다. 일명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외출과 종교 활동 자제, 모임 금지 등 사회활동이 위축되면서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사회적 우울현상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블루’란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을 합성한 신조어로 코로나 확산으로 질병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또한 재택근무와 개학시점이 연장되면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가족 간에 스트레스가 쌓여 불화를 겪기도 하다고 한다. 매일 중계 하듯이 코로나19 확진자의 숫자가 발표되고, 가까운 이웃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사람과의 단절로인한 스트레스 등 심리적 불안정한 상태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마치 바이러스처럼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과 우울의 문제는 특히 확진을 받아 치료중인 환자나 밀접접촉자가 되어 격리중인 사람들에게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에 대한 분노, 그리고 감염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자책과 죄책감이 질병과 싸우는 이들을 더욱 괴롭히는 심리 상태일 수 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대구에서 격리치료중인 환자가 자살을 시도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일부 미디어와 SNS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 또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중요한 점이다. 최초 발생지인 중국인과 중국교포에 대한 혐오, 대규모 환자가 발생한 대구경북지역이나 특정 종교에 대한 비난과 혐오성 발언들은 당연히 지금의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적대적 태도는 해당 대상자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병을 숨기고 은폐하게 하여 결국 전염병을 더욱 확산시키는 악순환의 상황을 만들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하며 치료받을 권리가 있는 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가장 무서운 적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 안에 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서로 탓하게 하는 혐오바이러스일 지도 모른다.

 이런 판데믹 상황의 전염병이 유행될 때 이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아닌 강한 사회적 연대의식이다. 과거 역사에서 전염병의 공포에 인해 집단 히스테리나 패닉에 빠져 사회적 연대가 무너지고 서로서로 믿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져 마녀사냥, 폭동과 테러, 사재기 등 전염병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혹 내가 환자가 되더라도 국가와 사회로부터 최선의 치료와 돌봄을 받을 것이라는 사회적 믿음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근간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이러한 믿음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와 보건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분명 충분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전통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나던 높은 시민의식과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전염병 사태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고 직간접적인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심리적 안정을 위한 마음 챙김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요즘 SNS와 일부 미디어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는 코로나 19에 대한 가짜뉴스와 정보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적당한 정도의 정보만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의료인으로 필자의 시각으로 볼 때 분명 현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한 방역당국는 가장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방역당국이 발표하는 정보 정도만 믿고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은 삼가는 것이 좋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하되 주변인들과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심리적 밀접접촉을 자주 하고, 규칙적 수면과 운동, 긍정적 마음을 유지할 것 등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상을 잘 챙기는 것이 이번 어려움을 이겨내는 슬기로운 방법임을 명심하자.

 김형준<의료법인 지석의료재단 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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