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와 함께하는 시간
차(茶)와 함께하는 시간
  • 이창숙
  • 승인 2020.03.15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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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72>
노동의 팽다도축(烹茶圖軸), 명대의 전선(錢選) 作,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스스로에게 ‘격리’를 당부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치고 힘든 시간이다. 자주 만났던 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보고 싶은 마음도 일어난다.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바닥을 칠 때가 되었나 하는 깊은 반성의 마음도 꿈틀거린다. 공동체를 주장하며 무엇이든 함께하는 사회를 이슈화했던 우리,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스스로 ‘사회적 격리’라는 말을 떠올리며 인터넷에서는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어찌보면 사회적 격리도 전염을 피하기 위한 나와 타인을 위한 하나의 처방이니 이 모든 것은 서로를 위함이다. 격리된 나에게 잠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차는 누군가와의 만남에서 소통하기 위해 마시거나 건강을 위해 마신다. 차의 다양한 속성 때문에 많은 선인들이 차를 예찬하였다. 한국의 다성(茶聖)인 초의가 저술한 「동다송」에 의하면 차를 마실 때 사람이 많으면 어수선하여 정취가 사라지고, 혼자 마시면 신묘한 경지에 이른다고 하였다. 둘이 마시면 좋고, 세 넷이 마시면 정취가 있으며, 대여섯이 마시는 것은 덤덤하고, 예닐곱이 함께 마시는 것은 단지 나누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렇듯 차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신묘한 경지에 이르고 싶다면 혼자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면 좋을 듯하다.

  당(唐) 말기 시인인 노동(盧仝, 795~835)의 「칠완다가(七碗茶歌)」는 유명하다. 노동은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이며, 호는 옥천자(玉川子)이다. 하남 제원 사람이다. 일찍부터 관직에 나가지 않고 소실산에서 은둔하였다. 그의 칠완차는 지금까지도 세계의 모든 차인들이 느끼고 싶은 차의 맛이다. 그의 호 옥천자는 그가 즐겨 이용한 산속의 옥천천이라는 샘의 이름을 따서 지은 호이다. 「칠완다가」의 원제는 「주필사맹간의기신차(走筆謝孟諫議寄新茶)」이다. ‘맹간의가 보내준 햇차에 대해 감사를 올린다’라는 시로 차에 대해 극찬한 내용이다. 당시 귀족만이 맛볼 수 있는 좋은 차를 보내줌에 감사하다는 글과 속세를 벗어나 홀로 차를 달여 마시는 기쁨을 노래하였다. 일부 내용을 살펴보자.

 

  “천자가 쓰시다 남은 차는 귀족에게 드림이 마땅하거늘 어찌하여 숨어 사는 산사람에게까지 왔는가. 사립문을 닫으니 속세의 객은 없고, 비단 모자 대바구니 위에 덮어놓고 홀로 차를 달여 마시네. 옥구름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찻잔에 떠오른 하얀 꽃은 빛이 나네”

 

  한 잔의 차를 마시니 목과 입술이 촉촉해지고,

  두 잔을 마시니 고독과 번민이 사라지네.

  석 잔을 마시니 마음이 열려, 책 오천 권의 문장이 그득하네.

  넉 잔을 마시니 가벼운 땀이 솟아, 평생의 불평스러운 일들이 모두 땀구멍으로 사라지네.

  다섯 잔을 마시니 살과 뼈가 맑아지고, 여섯 잔을 마시니 신선과 통하게 되네.

  일곱 잔은 채 마시지도 않았건만, 겨드랑이에서 맑은 솔바람이 일어나네

 

마지막 구절은 ‘봉래산이 어디요. 옥천자, 이 맑은 바람 타고서 날아가고 싶구나.’로 귀결된 시이다.

한 잔의 차가 목과 입술을 적셔 갈증을 해소했다면, 두 잔의 차로 고민과 번민을 떨칠 수 있을 것이고, 번민이 사라지니 마음의 문이 열려 오천 권의 책이 눈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누구나 문장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넉 잔을 마시니 땀이 나, 그간의 불평스러운 세상살이가 땀구멍을 통해 흩어지고 다섯 잔을 마시니 살과 뼈가 맑아진다는 내용이다. 여섯 잔을 마시니 신선과 통하더니 일곱 잔을 마시기도 전에 겨드랑이에서 솔바람이 일어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에 바람 타고 날아가 신선 세계에 이미 몸과 마음이 있음을 노래한다. 귀족이 마시는 좋은 차가 아니어도 노동의 시와 함께 차를 마신다면 번민과 외로움은 사라질듯싶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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