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최후승리 (6)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최후승리 (6)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4.03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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鳴梁 천혐이용 13척으로 130척 大破, 장쾌한 大勝

 어란진(於蘭津)에 집결한 적선 200여 척이 16일에 해협으로 진입할 것으로 확신한 이순신이 15일 밤 북서로 흐르는 조류를 타고 해협을 지나 함대를 북쪽 연안 우수영(右水營:南海)으로 이동시켜 대기했다.

 16일 이른 아침 척후군관이 달려와 적선 2백여척이 해협을 향해 항진해 오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일본수군은 협판안치(協坂安治) 래도통총(來島通總) 등당고호(藤堂高虎) 가등가명(加藤嘉明) 등이 이끄는 연합함대로 병력은 2만6천여명이었다.

 2백여척중 130여 척이 해협으로 진입하고 70여 척이 해협입구에 예비대로 대기했다.

 척후군관의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우수영에서 추가된 1척을 포함하여 모두 13척이 된 전 함대를 출항시켜 울돌목에 이르자 옆으로 전개시켜 해협을 봉쇄하고 닻을ㄹ 내려 북서류로 흐르는 조류에 전선이 떠내려 가지 않게 했다.

 낮 12시 쯤, 적 함대가 해협을 가득히 엎으며 이순신 함대 앞에 나타났다.

 이순신이 전 함선에 닻을 올리도록 하고 공격을 명령했다.

 그런데 닻을 올린 전선들이 아직도 북서류로 흐르는 조류를 따라 뒤로 흘러가 5백m 내지 1km까지 후퇴해 버렸다. 노를 저어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바다를 두덮은 적 함대를 보자 칠천량 패전의 공포가 되살아 난 것이었다.

 1백20m폭의 울돌목에 이순신의 上船(기함旗艦)만이 홀로 남아 130여 척의 적선들을 향해 20여문의 함포가 일제히 불을 토하면서 화살과 불화살을 쏘아댔다. 해협의 폭이 좁아 적선들이 10여척 이상 덤비지 못했다.

 이순신이 이같이 1시간을 홀로 싸우며 울돌목을 사수했다. 이순신이 탄 상선은 보통 판옥선(정원 194명) 보다 더 큰(정원 250명) 거함이었다. 화력도 막강했다.

 하오 1시쯤, 지금까지 일본군 쪽에서 조선군 쪽으로 북서류로 흐르던 조류가 조선군 쪽에서 일본군 쪽으로 남동류로 흐르기 시작했다. 총 반격의 시기가 다가선 것이다.

 이순신은 돛대 끝에 중군 소요기(中軍 招搖旗)를 올려 중군장 김응성(金應誠)을 불렀다. 지체현령 안위(安衛)와 함께 다가왔다.

 "군법으로 죽고 싶으냐"

 이순신의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들은 적진으로 돌격했고, 녹도만호 송여종(宋汝悰) 평산포 대장 정응두(丁應斗) 등이 뒤따랐으며 이윽고 13척 전 전함들이 돌격 대열에 뛰어 들었다.

 조선군 전함의 화력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각 전함 10여문씩 모두 150여문에 이르는 각종 총통이 불을 뿜을 때마다 수마석과 철환 등이 무더기로 날아가 적선을 부셨고, 200여 개의 산탄(散彈)이 한꺼번에 흩어지는 조란환(鳥卵丸)이 발사되면 적선의 갑판에는 살아 움직이는 군사가 한 명도 없을 만큼 적군이 전멸해 버렸다.

 대장군전, 장군전 등 쇠작살이 날아가 적선에 구멍을 뚫었고, 신기전이 불꼬리를 달고 날아가 적선을 화염으로 휩쌌다.

 적의 대장선이 깨지고 바다에 뻘어진 적장을 건져내 보니 래도통총(來島通總:馬多時)이었다.

 목을 잘라 돛대 끝에 매달자 조선군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치솟고 일본군 사기는 꺼질듯이 떨어졌다. 일본군 쪽으로 흐르는 조류의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육중한 조선 수군 전함들이 빠른 조류를 타고 적선들을 닥치는 대로 들이받아 대파했다. 불타는 적선에서 연기와 화염이 하늘에 가득찼다.

 적선 31척이 불타고 깨져 사라졌으며 90여척도 달아나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대파되어 다시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적군 전사자는 1만8천여명으로 추정되었다.

 적장중 등당고호(藤堂高虎)는 중상을 입었다.

 조선 수군 전함은 손실이 없었고 70여명의 전사상자를 냈다.

 이날 해전에서 1백여척의 피난선들이 조선 수군 뒤쪽에 포진하여 전선이 많은것 처럼 위장했고 수많은 피난민들이 해협 양쪽의 높은 산에 올라 이 장쾌한 해전을 지켜 보았다.

 조선 수군 최후의 승리가 확인되자 이들은 미칠듯 기뻐 뛰었으며 이순신 수군 재건대열에 참여했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8월26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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