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갑질
  • 정성수
  • 승인 2020.03.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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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2013년 이후 인터넷에 등장한 신조어다. 계약서에서 쌍방을 뜻하는 갑을甲乙관계로 ‘갑’은 유리한 지위에 있는 자를, ‘을’은 불리한 지위에 있는 자를 말한다. 이때 ‘갑’을 폄하해 ‘~질’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어감이 부정적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며 오만방자하게 구는 것을 속된 표현으로 ‘갑의 지랄병’이라고 한다. 지랄병은 민간에서 간질병이라고 부르는 병이다. 간이 뒤집혔으니 제 정신이 아닌 남의 정신으로 상대방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갑질을 키워드로 하는 뉴스를 보면 모 국회의원이 공항에서 보안 요원에게 한 행위가 공항 갑질로 이슈화되고 J대 병원에서는 직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를 받는 갑질 교수가 직위해제 되었다. H화학의 K회장은

 자기 아들이 술집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자신의 경호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을 모아 보복폭행을 가해 기업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 외 갑질 사례로 2013년 5월 N유업이 지역 대리점에 물건 강매를 했다고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4년 12월 부천 H백화점 주차요원이 ‘지하 4층으로 내려가 달라’고 하자 무릎을 꿇게 하고 쌍욕을 하면서 난동을 부렸다. 2015년 1월에는 L씨가 운영하는 디자인실에서 야근수당과 추가수당을 주지 않는다고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MK식품 명예회장 K씨가 운전기사에게 욕설과 폭행을 했다는 사건이 터졌다. 2016년 10월 tvN에서 드라마 제작을 맡았던 신입 PD가 사망했다. 직접적 원인은 자살이나 비인간적 노동 및 열악한 작업 환경의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2017년 7월에는 육군대장 P씨 부부 공관병 갑질 사건이 터졌다.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공관병과 조리병들에게 갑질과 가혹행위를 저지르면서 악랄하게 괴롭혀 왔다는 폭로로 알려진 사건이다. 18년 11월에는 H미래기술 회장 Y씨가 전직 직원을 폭행하고 수련회에서 닭을 석궁으로 쏘라고 지시하는 등 엽기적인 갑질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갑질 대명사는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이다. 2014년 12월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 내에서 당시 부사장 C씨가 승무원의 마카다미아Macadamia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사무장을 무릎을 꿇게 하고 용서를 빌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항공기를 유턴 시킨 뒤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하여 항공편이 46분이나 지연된 사건이다. 2018년 3월에는 같은 회사 C전무가 광고회사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을 뿌린 이른바 물 컵 갑질 의혹이 제기되어 국제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은 예전 같으면 단순히 비도덕적 행위나 폭력 행위로 소개되었을 정도의 일이다. 요즘은 갑질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갑질의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갑을 관계 이전에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고 나아가 사람을 소중하게 대할 때 자신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을이면서 동시에 갑이다. 갑질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 다른 을의 목을 죄고 있는 또 하나의 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성수(시인·전주비전대학교 운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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