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공포의 무게에 짓눌려 살다
두려움과 공포의 무게에 짓눌려 살다
  • 이소애
  • 승인 2020.03.12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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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햇살을 듬뿍 안은 양지바른 곳에 산수유나무가 있다. 나무는 용케도 바람과 태양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으스대며 산다. 나무가 노란 꽃망울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면 봄이 문턱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마스크를 쓰고 바깥세상을 보노라면 활짝 핀 꽃을 마음에 담는 일을 놓친다. 온통 코로나19가 하루를 끌고 다니더니 웃음을 잃었다. 두려움과 불안 공포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 마음대로 움직이는 일을 자제하고 산다. 그야말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사는 게 최선이다.

 억울하게 고통을 받고 사는 사람들과 외로움에 떨고 있을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3월인데도 활동을 멈췄다. 마치 사막을 체험하듯 자연의 소리에 나를 낮추고 들어보는 체험을 해보았다.

 체험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전주천 언저리 빈 의자에 앉아서 구김살 없는 태양의 열기를 가슴에 품어 본다. 체온이 올라갈까?

 천변에 아무렇게나 양지바른 곳 어디에서나 무리를 이루며 피어 있는 꽃. 그래서 천박하다고 하는 꽃. 아주 작은 꽃을 보면 무릎을 꿇고 자세히 바라보며 속삭이고 싶다. 이름을 불러보면 미소가 찾아온다. ‘큰개불알풀꽃’이라고 서너 번 불러보면 마치 어린 시절 개구쟁이 남자친구를 부르는 것 같아서 재밌다.

  ‘봄까치꽃’이라고도 한다. 아무렇게나 살아서 잘 자라는 꽃처럼 살고 싶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꽃을 사랑한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모든 국민이 힘들게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목과 갈등의 소리가 너무 커서 불안하다. 그뿐이랴. 이웃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 북한 등 세계 각국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과연 위정자들의 애국심은 올바른가. 한국 방문자의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106곳으로 늘었다는 방송을 듣고 힘들수록 국민은 뭉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솟는다. 그러니까 한국에 빗장을 걸어 잠근 나라가 유엔회원국 193국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절반이 넘는다는 셈이다.

 이런 위기의 기회는 새로운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나라 ‘대한민국’은 참으로 위대한 나라이며, 나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새로움을 깨닫게 해준다.

 공직자와 의료봉사자들의 희생은 내 몸만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나를 질책할 때도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두기에 동참하려고 불필요한 외출과 모임을 자제하고 있어 자칫 외로움에서 오는 우울증이 찾아오지 않을까 무섭다. 물론 자가격리를 통해 감염 가능성과 접점을 희소화하는데 공감하여 실천하고 있다.

 두려움과 공포의 무게에 짓눌렸던 요즈음 검은 구름 속을 헤치고 나온 기쁜 소식은 전주시민으로 살고 있음이 자랑스럽다. 전주시가 코로나19로 위기에 놓인 취약계층에게 50만 원의 긴급생활자금을 전국 처음으로 지원한다는 보도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작가는 <<당신이 옳다>에서 “‘나’가 희미해질수록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친다.” 생존의 최소 조건으로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주목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사람은 살 수 있다”라고 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쓸모없는 사람일지언정 가치인정을 해주어야 살맛이 난다는 의미다.

 무조건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가족 같은 관계의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방전 직전의 휴대전화 같은 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신경림 시인은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 (예담, 2002.)에서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과 삶을 따뜻하고 훈훈하고 넉넉한 곳으로 부꿔 놓는 일은 시 한 구절, 문장의 하나하나를 뜻있게 되씹는 일이다.”라고 한다.

 보기만 해도 정신적 위로를 받는 샛별 같은 친구를 만나서 옆구리에 끼고 온 시집을 읽어보는 일도 좋을 성싶다. 희미해진 나를 세상에 색으로 내놓는 작업이다. 나의 존재를 알려야 신나는 생을 누릴 수 있다.

 이소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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