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봉준호 감독의 세계 제패
블랙리스트 봉준호 감독의 세계 제패
  • 장세진
  • 승인 2020.03.05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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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이 제92회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수상한 이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5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7월 천만 관객 돌파때보다 더 많은 조명과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다. 촬영지 복원이나 관광지화는 물론 심지어 옛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까지 ‘봉준호 마케팅’에 가세하고 있다.

  그런 ‘봉준호 마케팅’은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봉준호 감독은 블랙리스트였다. 봉감독은 2017년 ‘옥자’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 진출했을 때 프랑스 통신 AFP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한국의 예술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악몽 같은 몇 년간이었다”며 “영화계 누구나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 꼬집을 수 없었다”고 했다.

  2018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보고서에는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대상으로 지목한 상업영화 15편의 목록과 이유가 나온다.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며 국민 의식을 좌경화”(‘괴물’), “공무원ㆍ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살인의 추억’),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설국열차’) 등이다.

  봉감독 영화에 대한 이런 이념적 잣대는 비단 이명박ㆍ박근혜 정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촛불혁명과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정부가 출범하고 블랙리스트를 없앴는데도 옛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기생충’을 “체제 전복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전형적인 좌파 영화”라 말하는 등 이념의 잣대로 평가절하하기 일쑤였다. 그들의 ‘봉준호 마케팅’이 볼썽사나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컨대 4ㆍ15 총선에 출마한 대구(봉감독의 고향) 지역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의 봉준호 공원, 봉준호 생가터 복원, 봉준호 기념관, 봉준호 명예의 전당 건립, 봉준호 동상 등 공약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봉감독은 1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쓴 웃음을 지으며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기사들을 보고 넘겼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신 ‘블랙리스트 봉준호’와 관련해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에게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집권 당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빨갱이’ 낙인을 찍은 야만적 행위에 대해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온 나라가 봉준호를 연호해도, 그를 블랙리스트에 가두었던 자유한국당만큼은 봉준호 감독과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봉감독을 지원했던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은 청와대 경제수석을 앞세운 박근혜정권의 핍박으로 2014년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건너간 바 있다. 만약 그 새누리당이 계속 집권했다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며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은 아예 제작 자체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참 끔찍스러운 블랙리스트다.

  뒤집어 말하면 블랙리스트 봉준호 감독의 세계 제패는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 덕분이라고 해야 맞다. “체제 전복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전형적인 좌파 영화”를 만드는데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창작의 자유를 맘껏 발휘해 만든 영화가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이명박ㆍ박근혜정권의 블랙리스트였던 감독 봉준호, 배우 송강호 입장에선 감회가 더 새로웠을 법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점심을 한 자리에서 “영화 산업의 융성을 위해 확실히 지원하되 간섭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한 걸 대통령이 축하자리에서 직접 약속해야 하는 저간의 사정을 목도한 셈이라 할까.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영화계 블랙리스트다. 어찌 그것이 그들만의 감회이겠는가!

 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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