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불씨
마음속의 불씨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0.03.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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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장르를 좋아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란 인류가 멸망한 뒤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그린 소설, 영화 등 작품을 말한다. 영화 ‘매드맥스’나 만화 ‘북두의권’을 떠올리면 된다.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암흑 속에 묵혀둔 진실, 밝혀지지 않은 계시를 말하는데 유구한 아포칼립스물(?)의 대표작으로 그 유명한 성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계시록(Apocalypse of John)이 있다.

 인류가 멸망한 이유는 다양하다. 핵전쟁,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 외계인의 침공, 이유 없이 나타난 좀비들까지. 멸망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가 담고자 하는 것은 멸망의 이유가 아닌 살아남은 자들의 삶에 대한 응시다. 남겨진 자들의 공포와 불안감 그리고 가지각색의 반응들. 무정부상태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하지만 약육강식의 쟁탈만 다루지 않는다. 사람들의 연대와 가족애, 희망이 없는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중심이다. 마치 로마의 박해로 꿈도 희망도 사라진 초대교회 신자들이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라고 계시록에 적었듯, 여전히 계속되는 삶에 대하여 희망을 구하는 외침을 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The Road)>다. 2009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더 로드>는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인류가 멸망하고 난 뒤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의 행적을 그린 로드 무비다. 식수는 오염되고 식량은 없다. 햇빛이 비치지 않고 주변은 온통 재로 뒤덮인 상황에서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는다. 재앙적인 환경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상황이다. 아버지는 총알이 한발 남은 리볼버 권총을 품고 10살도 안된 아들과 함께 바다로 간다. 영화에서는 모든 장면이 흑백이다. 코맥 매카시는 60살에 아들을 얻었고, 세상에 아들과 둘만 남겨진다면 어떨지 상상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영화와 소설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과 사투가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심리의 저변에는 스크린 속 상황이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에 있다.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 핵전쟁이나 외계인이 침공하여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영화관을 나서며 평화로운 일상으로 복귀하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요즈음은 마음 놓고 ‘아포칼립스’ 장르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위협은 눈앞에 있고 공포는 집단 감염된다. 현재 상황은 다분히 ‘아포칼립스’적이다. 백신이 없는 바이러스, 실험실에서 일어난 바이러스 유출 사고라는 음모론은 영화의 프롤로그다. 계시록의 해석을 중시했다는 종교집단은 집단감염의 원천으로 지목받고 있고, 자신들의 존재를 숨긴다. 감염예방을 위한 마스크는 품귀다. 무엇보다도 감염자에 대한 혐오는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영화 <더 로드>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부자는 서로를 위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들아. 좋은 사람들은 별로 남지 않았단다. 나쁜사람들을 조심해야 해. 무엇보다 우리는 반드시 불을 가지고 있어야 해.” “무슨 불이요? 아빠” “마음속의 불씨”……. “아빠 우린 다른 사람을 먹지 않을거죠?” “물론이지” “우리는 불씨를 가지고 있어요”. 임대료를 인하해주는 임대인, 기부를 하는 사람들, 의료봉사를 하는 의료인들. 우리는 마음속에 불씨를 가지고 있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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