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역사박물관의 전라감사 임용장
전주역사박물관의 전라감사 임용장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3.02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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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유물을 찾아서 9.

 전주역사박물관은 2002년 5월 개관한 이래 전주의 역사와 문화 관련 1만여점 이상의 유물을 수집·관리·연구·전시하고 있다. 전주의 역사·문화 정체성을 찾고 전주정신의 계승발전이라는 목표를 표명하며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해 시민들에게 지역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이 보유한 유물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전라감사 임용장’이다. 전라감영이 올해 5월까지 완공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점에, 전라감사 임용장은 다시한번 큰 의미를 갖는다. 1682년(숙종 8년) 국왕이 이사명(李師命)을 전라도 관찰사 겸 전주부윤으로 임명하면서 내련 교지(敎旨)다. 이사명은 숙종 11년까지 전라감사로 재임했다.

 그렇다면 이사명은 누구일까. 그는 1647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 자는 백길(伯吉), 호는 포암(蒲菴)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이민적(李敏迪)이다. 명문가의 후예로 경종 때 신임사화로 처형된 노론 4대신의 한명인 우의정 이이명이 친동생이다.

 이사명은 현종 13년(1672) 진사시에 합격하고, 숙종 6년(1680) 춘당대 문과에서 4명을 뽑았는데 이중에 1등으로 장원급제했다.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을 지내고, 숙종 6년 홍문관 교리로 있으면서 서인으로 경신대출척에 가담하여 남인을 몰아내는데 공을 세웠다. 이로서 보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완녕군에 봉해졌다. 숙종 7년에 승지, 병조참판, 호조참판을 지내고 숙종 8년 도승지에 오르고 전라감사에 임용되었다.

 이사명은 전라감사 재임기간 동안 전라감영에서 돈을 주조할 수 있도록 청하여 허락을 받고 동전을 주조했다. 또한 전주 한벽당 계단 위에 층층 누각을 건립하였다. 숙종 10년 7월 영의정 김수항이 호남의 한재가 심하니 전라감사를 잉임(仍任)하자고 청하여 다시 임명됐다. 이후에는 도승지,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냈다.

 그러나 숙종 14년, 사헌부 지평 윤세희로부터 권세를 탐했다는 탄핵을 받고 삭주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사사(賜死) 되었고 후에 신원되었다. 문장과 시재가 뛰어난 석학이었으나, 당쟁에 깊숙이 관여한 탓으로 유배지에서 비명의 최후를 마쳤다.

 이사명의 기록은 많이 전해지지는 않으나 그가 전라감영에서 돈을 주조하고 한벽당에 누각을 건립할 정도라면 그가 재임할 때 다양한 행정업무를 진행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휘빈 기자

 

 전주역사박물관

 전주역사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5층의 규모로 교육체험실, 전주문화예술실, 동학농민혁명실, 기획전시실, 전주역사실 5개 전시실과 1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꽃심관으로 구성됐다. 연간 4회 이상의 전시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전주의 역사문화예술 콘텐츠를 소재로 한 상설체험, 박물관학교, 답사, 시민강좌, 세시풍속한마당 등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17년간 쌓인 경험과 역사문화관련 전문인력 등 풍부한 인프라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과 매년 1월 1일은 휴관이다. 현재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지난달 22일부터 임시휴관을 가지고 있다. 관람 및 상세 문의는 전화(063-228-6485~6)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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