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중진 정치인
선거와 중진 정치인
  • 이흥래
  • 승인 2020.03.01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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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난리를 쳐도 북상하는 꽃의 행력을 막지는 못하리라. 이대로 가면 우울한 꽃잔치가 펼쳐질 무렵, 우린 총선을 치르고 새로 뽑힌 선량들을 보게 될 것이다. 꽃과 새 선량들이 같이 찾아올 모양이다. 어찌 보면 정치인과 꽃의 생태는 참으로 비슷하다. 봄이 되면 벌판에 뿌려진 수많은 씨앗이 가지마다 찬란한 꽃을 피워내고 뭇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곤 한다. 하지만 하룻밤 거센 비바람에 져버린 꽃은 그야말로 천덕꾸러기일뿐이다. 정치인 역시 수많은 지망생들과의 피말리는 경쟁을 거쳐 당선되면, 그야말로 대단한 권력과 위세로서 많은 이들을 호령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단한 정치인들도 일단 낙선하게 되면 그야말로 정처없는 낭인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오라는 이도 없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예전의 광영을 되찾으려 하지만 상갓집의 뭐처럼 눈칫밥이나 얻어먹어야 하는 그런 쓸쓸한 처지이니 낙화와 무엇이 다르랴. 그러기 때문에 대부분 정치인들은, 당선이 확정된 그 순간부터 주변의 눈총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 선거 준비에 혈안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인심은 조석변하고 시절은 하수상하니 어찌 미래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원수 같은 선거만 없다면 이보다 좋은 직업이 없을텐데, 선거는 때만 되면 잊지도 않고 찾아온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북출신 여당 중진의원들이 잇달아 공천경쟁에서 탈락하는, 그야말로 초유의 격변이 발생하고 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6선의 이석현 의원과 당 사무총장을 지낸 3선의 이춘석 의원, 그리고 저명 언론인 출신의 재선 신경민 의원이 공천경쟁에서 충격의 탈락이란 성적표를 받았다. 또 완주 출신인 심재권 의원과 전북이 시댁인 유승희 의원도 모두 4선 고지를 오르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게 되었다. 면장만 될래도 논두렁 정기를 타고나야 한다는데, 국회의원 당선횟수를 합하면 무려 17선이나 되는 그 좋은 국회의원들이 낙천되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더불어 민주당 1차 경선에서 탈락한 현역이 7명인데, 그 중 다섯이 전북출신이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우리 전북으로선 정치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역구가 익산인 이춘석 의원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들 수도권 전북출신 낙천 중진들은 새만금 사업은 물론 탄소 관련법 통과 등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전북현안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던 지원군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탈락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더구나 우리 전북출신인 6선의 정세균 총리와 4선의 진영 행안부장관, 3선의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그리고 전북이 시댁인 5선의 추미애 법무부장관 등이 입각한 관계로 다음 총선에는 불출마하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우리 전북의 정치력이 엄청나게 약화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이러다 다음 국회에서 우리 전북출신은 5-6선급 거물은 물론 3-4선급 중진도 찾아보기 어려우면 어떻게 되나.

국회에서의 역량발휘는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선횟수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고시에 합격해 장차관을 지냈거나, 사회 각 분야에서 제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국회에서 초선들은 대부분 맨 앞자리 차지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원내대표의 말 한마디에 돌격대가 되어야 하고, 박수부대가 되기도 해야 한다. 국회 내 주요 보직인 상임위원장이 되려면 거의 3선 이상은 해야 하고, 당내 어지간한 보직에 출마하려 해도 초선은 끼어들기 어려운 것이 선수의 역학이다. 따라서 요즘처럼 험지출마다, 수도권 차출이다해서 흔들어대는 판에 5선, 6선 한다는 건 한마디로 천운을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초선과 다선의원의 정치적 말발도 큰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다. 초선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도 다선의원 한마디면 간단히 평정되기 마련이고, 정국이 꼬이거나 현안해결이 어려울 때일수록 여야를 막론하고 다선 중진들의 영향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흔히 우리나라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통치행태라서 그 폐해를 개선해야 한다고 떠들지만, 국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도 식물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정치 상황이다. 우리 전북은 지난해 국회 예산심의에서 사상최대인 7조 6천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는데, 전북출신 다선의원들이 주도하는 다당제 합의가 없었다면 이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역마다 정치적 거목과 합리적이며 전문성을 지닌 정치신인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2-3선급 중진 등이 고루 배출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요즘 당마다 젊은 피 수혈 등의 명분으로, 전문성이라곤 눈에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신인들을 대거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정치세대만을 옹호하거나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실정치 상황을 인식해 우리 지역에 정말 필요한 인물이 누구인지, 앞으로 남은 총선기간 현명하게 판단해 보자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아직도 많은 후보들이 남아있다.

 이흥래 <前전주MBC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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