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표와 생활통지표
통신표와 생활통지표
  • 박성욱
  • 승인 2020.02.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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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표와 생활통지표

학교를 다니면서 한 학년을 마치고 선생님 꼭 나눠주시는 것이 있다. 통신표다. 80년대 이전까지는 컴퓨터와 프린터가 널리 쓰이지 않아서 선생님들께서 손수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직접 작성하셔서 보내주세요. 90년대 들어서서는 이제 컴퓨터와 프린터 도움을 받아서 비교적 간단하게 통신표를 작성할 수 있었다. 나 어릴 적 선생님께서는 통신표를 아이들 손에 쥐여 주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꼭 가져오라고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기록이 차곡차곡 기록되는 소중한 통신표라서 아주 깨끗하게 보고 가져오라고 하셨다. 성적이 좋고 선생님께 칭찬 많이 받는 친구들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부모님께 칭찬받을 일을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나 성적이 나쁘고 선생님께 자주 혼나는 친구들은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부모님께 혼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 통신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않을까? 하지만 피할 수가 없다. 부모님 확인 도장을 받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확인 도장을 받아오지 않으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혼나기만 하면 다행이다. 잘못하면 회초리도 맞았다. 통신표를 나눠 준 다음 날 선생님께서는 번호를 불러가면서 통신표를 한 사람씩 걷으셨다. 그런데 한 친구가 자주 표정이 안 좋고 잔뜩 움츠려 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장난 잘 치고 운동도 잘하는 친구다. 하지만 공부는 좀 그랬다. 선생님이 몇 번 부른 후에 뒷짐에 감춰둔 통신표를 꺼낸다. 찢어진 통신표! 통신표를 보고 아빠가 찢었다고 하셨다.

그때 선생님 표정. 뻥! 새 종이 양식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시 다 그대로 옮겨 적어야 한다. 교실에는 말 없는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성적이 좋지 않고 칭찬보다는 꾸중이 많이 적힌 통신 표를 보고 부모님은 마음이 상하셨고 홧김에 통신표를 찢었다고 했다. 물론 엄청나게 혼났다고 했다.

그 통신표는 선생님, 부모님, 아이에게 모두 행복한 통신표가 아니었다. 요즘에는 생활통지표를 보낸다. 아이의 성장을 중심으로 아이가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몸과 마음, 지식이 자랐는지 쓴다. 어떻게 하면 생활통지표가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생활통지표는 만드는 선생님도 받는 부모님과 아이들 모두다….

 

▲ 행복한 성적표

“꽃길을 걷다.”

2019학년도 나의 계획이었다. 땅속 새싹이 돋아서 자라고 꽃이 피고 핀 꽃을 그리고 간직하고 진 꽃을 정리하고 다음 꽃을 기다리는 과정, 자연과 삶, 배움이 하나 되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고 그 과정을 오롯이 기록으로 남겼다. 학년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로 성적표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꽃 가방을 만들고 그 속에 가을 따서 말린 맑은 향 산국 차(야생 국화차)와 아이들 행복한 기억을 담은 생활통지표를 담았다. 행복한 성적표다. 한해살이가 가득 담긴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생활통지표가 모두에게 행복이 되지 않을까?

생활통지표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그날 저녁 부모님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이 계절마다 향기를 품어서 우리 애들이 참바르게 자랐나 봅니다. 아이들 한명 한명마다 사랑과 관심으로 거름을 주셨으니 졸업 후에도 언제까지 참스승으로 기억할 겁니다. 지난 일 년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심어주신 따뜻한 꽃씨가 우리 반 친구들 모두에게 오롯이 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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