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독립운동가 행적을 찾아서
장수-독립운동가 행적을 찾아서
  • 전일환
  • 승인 2020.02.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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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특집) 10.
건재 정인승 선생 동상
건재 정인승 선생 동상

 산고수장이라 했던가. 산이 높으면 물 흐르는 골은 길 수밖에. 군자나 어진 사람의 덕이 후세에 길이길이 전함을 은유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 이어 달아, ‘운산 창창 산수앙앙 선생지풍 산고수장’이라 하였으니, 구름이 걸린 산은 수목이 푸르고 강을 이루어 흐르는 물은 길고도 넓어라. 선생의 덕풍은 산이 높고 물이 긴 것과 같다 하리라. 풀이된 뜻이다. 그리하여 장수인 것이다.

 장수군은 소백산맥 서쪽 사면의 산간 지대에 위치한다. 군의 동녘으로 소백의 주능선이 흘러내리는 경계에 경상의 함양, 거창이 이어지고 전북 도계의 서쪽은 진안 임실 남쪽은 남원 북쪽은 무주에 접한다. 팔공산은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계가 되며 여기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천천면을 거쳐 금강으로 유입된다.

 장수에는 2덕 3절 5의라 일컬어 이 10분을 장수를 빛낸 인물로 꼽는다. 이 가운데 5의는 백용성 조사, 문태서 장군, 전해산 장군, 박춘실 장군, 정인승 박사 등으로서 모두 높은 공훈이 인정되어 그에 합당한 훈격이 추서되었다.

백용성 조사 유적지
백용성 조사 유적지

 □ 산서와 번암의 3·1만세운동

 산간벽촌 중에서도 깊고 깊은 산골 두 곳의 장터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통신, 교통의 편리가 철저히 단절된 오지에서 한양으로부터 전달된 3·1운동정신이 행동으로 구현되었음은 경이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먼저 산서 장터 3·1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0일에 산서면 동화리 일대에서 군중들이 태극기를 흔들었던 운동이다. 장수군 최초로 만세운동이었는데 중앙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천도교 교구는 이를 군내 각처에 게시하고 만세운동 참가를 널리 호소하였다. 정보가 일본분견대에 흘러들어가 철통같은 감시를 받게 되어 군내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였으며 3월 19일 동화리 장터에서 박정주 등이 주민들을 선도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였으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박정주 등 7인은 체포되었고 박정주는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았다.

 3·1운동이 왜 거룩하고 위대한고 하니 삼천리 방방곡곡 조선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었었다는 데서 연유한다.

 번암 장터 3·1만세 운동은 산서만세운동이 있은 사흘 뒤인 3월 22일 번암면 노단리 장터에서 일어났다. 임실 출신 박준수와 이공일 이종대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다. 박준수 등은 일경에 체포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번암 주민을 모두 애국의 열사로 이끌고 선도한 혁혁한 애국 운동이었다.

 

 전일환 수필가·전주대 명예교수 (전주대 부총장, 북경한글학교장, 한국언어문학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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