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맞이하며
3·1절을 맞이하며
  • 주영생
  • 승인 2020.02.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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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온 겨레의 항일 민족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2월 8일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하고,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같은 시간에 탑골 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들어갔고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도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이어져 전국 220개 군(郡) 가운데 211개 군(95.9%)에서 일어났습니다.

  전북지역에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은 들불처럼 일어나 군산에서는 영명학교 학생과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3·5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28차례에 거쳐 3만여 명이 참여했고 전주는 장날인 3월 13일을 기해 남문 인경소리를 신호로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채소가마니로 위장해 나른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시작했습니다. 3월10일 임실, 3월 15일 고창, 3월 19일 김제, 4월 3일 남원, 4월 4일 익산 등 전북에서 121회에 걸친 독립선언이 있었고 만세운동에 참여한 도민이 20여만 명에 달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인 박준승 선생은 임실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때 손병희 선생의 지시를 받고 독립선언서 5,000장을 나누어 주어 장성, 남원, 임실 등 각지에서 궐기하게 하였고, 서울로 올라와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하셨습니다.

  전북출신의 또 다른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은 백용성 스님으로 3·1운동 때 한용운 선생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 일제에 맞서 한국불교를 사수하고 중국 연길에 대각교당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지원하셨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국이 얼어붙고 제101주년 3·1절 기념식 또한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3월 1일 문 앞에 태극기를 내걸고 그날의 함성과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3·1운동은 신분과 종교, 남녀노소 상관없이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위해 일어난 거국적인 운동이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목숨을 걸고 외쳤던 ‘대한독립만세’는 다음 달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교두보가 되었고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발현하였습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근현대사뿐 아니라 2016년 촛불까지...3·1운동 정신은 지금의 대한민국, 현재의 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나라를 위한 헌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보훈정신을 계승할 때 우리의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주영생 전북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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