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권의 기록물이 쌓인 시간…느슨한 연대의 힘을 보여준 ‘미술로 창’ 잡담클럽
벌써 6권의 기록물이 쌓인 시간…느슨한 연대의 힘을 보여준 ‘미술로 창’ 잡담클럽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2.2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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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3일 PlanC에서 진행된 미술로창 8+256 모임 \'유대수 숲에서 생각한것들\'전..가운데 빨간옷을 입은이가 고 김충순 작가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모였을 때가 더 좋더라.

2014년 2월 25일 수요일에 시작된 ‘미술로(路)창 잡담클럽’은 햇수로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지역 내 보기 드문 장수 네트워크다. ‘미술로창’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주에 있는 전시장을 방문하고, 작품을 감상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매우 가깝지도 않게 서로를 지탱하면서 말이다.

25일 쏟아지는 비를 뚫고 만난 ‘미술로창’의 기획자 고형숙(화가)씨는 6년 전 ‘오늘’을 기념하며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기억되는 점은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모임을 이어왔던 일”이라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고씨의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런 날 있죠. 설날이나 추석 당일, 혹은 크리스마스가 겹치는 수요일이요. 그런 날이면 오늘 방문자는 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는데, 저 혼자일까봐 일부러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자주 오는 분들도, 일년에 한 번 오시는 분도 있지만, 모두 잊지 않고 여전히 찾아주고 있다는 점이 바로 ‘미술로창’의 힘이죠.”

 6년 전, 페이스북에 “우리 만나자”며 첫 글을 올렸을 당시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랜 기간 모임이 지속될 것이라고는 그 또한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참 쓸데없이 오래하는 것 같아. 언제까지 할꺼야?”라는 이야기를 해도 웃어 넘겼다. 이제는 매주 수요일 정오가 되면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어쩌면 ‘미술로창’은 정부 추진의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의 원조 격(?)인 셈이니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 있더라도 개인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 서로 과하게 챙겨주지 않는 분위기, 참여를 강제하지 않는 것, 느슨하게 이어지는 시간들, 예산에서 자유로운 점, 본인의 점심값은 스스로 들고오기 등 부담 없는 만남이 지속될 수 있는 분위기가 이 모임의 장점이다.

고 씨는 “초창기에는 화가인 제게 그림 설명을 해달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개개인의 감상을 해치고 싶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씩 전시장을 관람하면서 직접 작가들에게 그림이야기도 듣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보면 ‘예술이 일상으로 스며든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주 시내 전시장을 6년간 돌아다니다 보니 각 전시장마다 시즌별로 진행되는 기획전시를 해마다 찾게 되고, 지속적으로 찾게되는 작가도 있으며 그들의 변모상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면서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열악한 지역미술계의 현실 속에 갤러리도 부족하지만 기획자도 부족해 갤러리 특유의 정체성을 드러내보이는 전시가 부족한 점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매년 쌓인 이야기들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왔다. 벌써 6권째다. 최근 발간된 (사)문화연구창의 문화예술비평지 ‘담론창 Vol 11. 미술로 창’에는 2019년의 일들이 기록돼 있다. 누구와 누가 전시장에 모여 함께 작품을 관람했고, 밥을 먹었으며, 어떤 수다를 떨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다. 참여자들은 1시간 남짓 후 일상으로 돌아가곤 하지만, 그 시간을 기록해준 고씨의 수고로움 덕분에 추억을 몽글몽글 쌓아갈 수 있다.

 고 씨는 “올해 책을 엮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난해 11월 작고한 김충순 작가가 그해 1월에 ‘미술로창’에 방문했던 모습이 기록으로 남겨진 부분이다”면서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어쩌면 하찮아보일수 있지만 ‘미술로창’과 함께한 시간들이라는 공동의 의미에 더해 개인에게도 의미가 큰 일이 아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 한숙 작가의 아들 학동이는 첫 만남에서 강보에 싸여 왔었는데, 어느 해에는 유모차를 타고 오더니, 아장아장 걸어다니다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단다. 한 아이의 성장과정을 함께 지켜봤던 일 또한 남다른 의미인 것이다.

 책은 무료로 배포한다. 책이 필요한 사람은 시간되는 수요일에 ‘미술로창’에 놀러가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참여 방법은 간단하다. 해당 주에 페이스북에 공지되는 전시장을 확인하고 식사비를 지참해 함께하면 끝. 미술로창 잡담클럽 9+313번째 시간은 26일 오후 12시 서학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김승주 작가의 ‘THE DREAMERS’전에서 이어간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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