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인간의 인연
술과 인간의 인연
  • 임보경
  • 승인 2020.02.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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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지방사립대학이라고 불리는 서원에선 향음주례를 가르쳐온 것으로 안다. 술을 마셔본 사람은 한 번쯤 느꼈을 것으로 본다. 기분이 붕뜨는 느낌과 얼굴이 상기되며 가슴이 콩닥콩닥해서 마음이 불편한 듯 좋아진다. 그런데 과하면 즐거움도 있겠지만, 사람으로서 예를 잊는 경우가 흔하다. 이번에 찾은 곳은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는 술테마박물관을 찾아보았다. 술에 대한 역사와 유래 그리고 활용 등이 궁금하여 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비스듬히 가파른 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술테마박물관은 “한잔하세”라는 친근한 인사가 눈에 훅 들어온다. 탐스럽게 내리는 2월의 술박물관은 찾아오는 손님을 후덕하게 맞이했다.

 인심 후한 우리고장의 마음처럼 술에 대한 역사와 유래 그리고 시대별로 사용된 술병들과 술을 빚는 도구 등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어릴적 추억 속의 풍경들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웃음짓게 하며 영화를 찍어내듯 잠시 추억의 타임머신에 승차하는 모습들이다.

 우리 인류역사상 술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기록으로는 삼국시대부터 논하겠지만,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던 신석기시대 이전인 채집과 수렵시대부터 과실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과실이나 벌꿀같은 당분을 함유하는 액체에 공기 중의 효모가 뒤섞여 자연적으로 발효되면서 술의 기원이 시작됨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든 간에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인 술은 막걸리이다. 특히 호남의 대표적인 곡물인 쌀의 원산지답게 그 지역의 원료를 주재료로 한 막걸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듯 술의 원료는 그 나라의 주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렵과 채취시대는 과실주가 자연속에서 탄생하였고 유목생활의 시대에는 젖술이 그리고 농경시대에 와서는 곡식으로 빚어낸 곡주가 탄생되었다. 그후 정착생활과 농경이 시작되면서 청주나 맥주 등이 녹말을 당화시키는 기법이 개발된 후에야 나온 것으로 본다.

 또한 술의 관습도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국시대가 등장하기 전의 여러나라들(부여, 고구려, 옥저와 동예, 삼한시대)의 제천행사에서도 그들은 풍요와 부족의 평안과 번창을 기원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경의 시작에서 빚어낸 술은 농경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술의 원료가 되는 곡물은 그 땅에서 살아온 인간의 주식이며 농경에서 얻어지기 때문에 포도재배와 양조법을 널리 전파한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이라 불리는 바커스는 대지의 풍작을 관장하는 신으로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포도를 재배하게 되었다는 종교와 신화적인 이야기의 유래도 들을 수 있다.

 이렇듯 자연의 우연 속에서 발견된 술은 살아가는 모습과 환경속에서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역사와 어우러지게 되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을 보면 고구려와 삼한은 당시에 이미 대규모로 술 만드는 기술이 있었고 고구려는 장을 만들고 술을 빚으며 즐긴다는 기록(고구려 고분벽화 속 식생활)이 있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술을 자주 마셨고 식사때도 술을 겸하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원나라의 양조법이 도입되었으며 쌀 중심의 양조법이 한층 더 발전하고 다양해졌다. 왕이 사는 궁궐에서도 술을 빚고 보관하는 일을 전담하는 양원사라는 관리를 두었으며 불교문화가 가장 번창한 고려의 사찰에서도 곡차라고 부르며 대규모 양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술의 개화기라 불리는 고려시대는 몽골의 침입과 소주가 전래하기도 했다.

 유교문화와 어우러진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술의 유형과 제조법과 품질을 좀 더 다양하고 고급스럽게 승화시킨다. 고급화되면서 여러 문헌에도 등장한다. 허균과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작자미상의 술 만드는 법(구본유람) 등이 수없이 등장하면서 교육을 하는 서원에서도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치는 부분이 될 만큼 우리의 생활예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받아들여진 일본식의 양조법인 탁주와 청주(정종)가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의 전통주의 낯섦과 생소함이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까지 전해온 우리의 전통주의 역사와 한국 전통주가 말살된 이유는 무엇일까?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일제의 수탈작업인 주세령이 강제집행이 시작되면서 일정규모 이상의 공장에서만 술을 제조할 수 있기에 2만8천여공장에 이르던 전통소주장은 급감하였고 또한 일본식 누룩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전통주들은 약주와 탁주 소주로 매우 단순화, 규격화되면서 차차 본래의 맛과 향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일제의 주세령은 일제가 술 제조장을 관리하고 세금을 쉽게 매기기 위한 절차였던 것이다. 1945년 광복이후에도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 현대사회에서도 우리의 전통주의 명맥은 희미해지고 희석된 소주가 대세를 이루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쌀막걸리와 전통소주가 다시 등장하며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술은 사전적 의미로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이다. 주세법엔 알코올 1도 이상의 음료이면 술이라고 정의한다. 제천행사에서도 중요시했듯이 현대사회에서도 사회적 의미로 중요하다.

 고려시대 술을 주인공으로 쓴 “국선생전”의 문장가 이규보는 고구려를 통한 민족혼을 깨우기 위해 동명왕편을 집필했고 당시의 시대상을 알린 작품 동국이상국집을 집필한 그는 상당한 애주가로 알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으로 가사문학을 꽃피운 송강 정철 역시 풍류를 논하며 자연을 아름다운 문학에 담은 것이다.

 세계적인 정복자 나폴레옹도 혹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보드카를 마셨을 것이고 미국의 헤밍웨이도 베토벤도 역시 문학과 음악을 노래하였을 것이다.

 과거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술은 풍류와 문학 그리고 정치를 이어주는 한 부분으로서 노동과 여가를 이어주는 현대사의 독특한 것으로 업무의 연속이면서 사교를 위해 또한 스트레스 해소와 창구로도 이용되기도 해왔다. 1920년대 발간된 세계알코올대사전에서 최초로 한국인의 음주양상을 표현했는데 “한국인은 술 마시기를 매우 좋아하며 타인의 음주행위에 매우 관대하다”라고 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주의 역사와 유래 속에서 지키고 싶었던 정신을 생각하며 술 문화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좀 더 성장된 모습으로 즐기면서 계승했으면 한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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